“그러면 선생님은 어찌하여 김이정이 보낸 노새를 돌려 보내셨습니까. 연로하신 선생님께서 타고 다시니라고 보내온 노새는 의로운 선물이 아니라는 말씀이십니까.”
“나는 그 선물이 의롭지 않은 선물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의롭지 않은 선물이라고 생각지 않으시다면 왜 노새를 돌려 보내셨습니까.”
퇴계가 정색을 하며 대답하였다.
“그러나 남의 선물을 받는 데에는 법도가 있는 법이다.”
“그 법도란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러자 퇴계는 대답하였다.
“옛날 사람들은 집에 부모가 생존해 계시면 남에게 거마를 선물로 주는 법이 없었다. 김이정은 부모님이 생존해 계심에도 불구하고 그런 법도를 몰라도 단순한 호의로 나에게 노새를 보내주었겠지만 그 법도를 알고 있는 나로서야 어찌 그 노새를 받을 수 있겠느냐.”
이 말을 들은 이덕홍은 새삼스럽게 스승의 덕행에 머리를 수그리지 않을 수 없었다고 ‘언행록’은 기록하고 있는데 어쨌든 이 일화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김이정은 스승에게 노새를 보낼 정도로 극진히 퇴계를 섬기고 있었고 퇴계 역시 자신을 친부모보다 더 섬기고 있는 김이정에게 호의를 느끼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특히 김이정은 고봉과도 각별한 우정을 쌓고 있어서 퇴계와 고봉 사이에 중간역할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10월 15일 보낸 퇴계의 편지에서도 그러한 삼각관계가 여실히 드러나고 있음인 것이다.
즉 고봉은 우연히 김이정을 만났을 때 퇴계가 주장한 ‘사물의 이치에 이른다(物格).’는 내용과 ‘무극이면서 태극이다(無極而太極).’란 해설에 대해 나름대로 치열하게 반론을 제기하였던 것이다.
아무리 스승의 주장이라 하더라도 옳지 않다고 생각되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반드시 입바른 직언을 날려야 직성이 풀리는 고봉의 거친 성정을 엿보게 하는 장면 중의 하나인데, 그 무렵 퇴계는 17세의 어린 나이인 선조를 위해 ‘성학십도(聖學十圖)’란 말년의 유작을 완성하고 있었다.
‘성학십도’는 퇴계가 도산에 퇴거하여 연구와 저술에 강학에만 전념한 끝에 마침내 68세에 지은 만년 작으로 그의 학문의 온축(蘊蓄)를 남김없이 쏟아 부은 명저인 것이다. 제1도인 태극도(太極圖)로 시작되는 이 책은 대학도(大學圖), 심통성정도(心統性情圖) 등 10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는데, 당시 정주계(程朱系) 성리학의 총결산서와 같은 것이었다.
퇴계는 이 책에서 당시까지의 우주설과 이기설을 도형(圖形)과 해설의 방법으로 총체적이면서도 중점적으로 요령 있게 정리소개하고 있다. 따라서 퇴계학의 규모와 성격과 깊이를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는 명저인 것이다.
퇴계는 1568년 선조에게 ‘차문(箚文)’을 지어 함께 바쳐 올린다.
2006-08-1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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