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역시 이번의 귀향길이 살아생전 자신의 마지막 여정이라는 것을 느꼈던 것일까. 고봉과 더불어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면서 다음과 같이 시를 짓는다.
“함께 배 타고 강을 건너니(列坐方舟盡勝流)
가려던 이 맘 온종일 머뭇머뭇.(歸心終日爲牽留)
마음 같아선 한강물로 벼룻물 하여(願將漢水添行硯)
무한 수심 떠나면서 다 쓰고 싶네.(寫出臨分無限愁)”
이때 퇴계는 고봉에게 자신이 임금에게 고봉을 천거하였음을 귀띔하고 부디 수렴하여 근신할 것을 관곡(款曲)하게 충고하였던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사실은 귀향길에 오른 스승 퇴계가 자주 꿈에 나타나자 고봉이 다음과 같은 시를 읊어 퇴계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전날 밤은 메투리에 지팡이 짚고 나들이 하는 선생님을 뫼셨고,(前夜依 杖陪)
오늘밤은 관곡하고 뜻 깊은 말씀을 들었습니다.(今宵款曲笑談開)
담소 가운데 분명한 것은 한결같은 나라근심.(分明一念猶憂世)
매화 보러 가신 선생님이 아님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可識先生不著梅)”
시 속에 나오는 ‘관곡하고 뜻 깊은 말씀(款曲笑談)’, 그것은 바로 거친 성정을 지닌 고봉에게 준 스승 퇴계의 마지막 친절하고 정다운 충고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고봉의 이 다정한 시를 통해 또한 알 수 있는 것은 이 무렵 퇴계는 ‘매화 보러 가신 선생님’으로 불릴 만큼 매화 한 그루에 심취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수수께끼의 매화는 8개월간의 한성객사 생활에서도 퇴계의 곁을 줄곧 지키고 있었다.
누가 이 분매를 기증하였는지 혹은 퇴계가 이 분매를 직접 구했는지 알려진 바는 없지만 이 분매는 퇴계의 객지생활을 달래줄 유일한 분신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퇴계는 이 매화를 ‘임’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때로는 매화의 신선, 즉 ‘매선(梅仙)’으로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급하게 한양을 떠나게 된 퇴계는 그러나 이 분매를 고향으로 가져가지 못한다.
이때 퇴계는 이별하는 매화를 위해 ‘한성우사 분매증답(漢城寓舍 盆梅贈答)’이란 시까지 남기고 있다. 증답가(贈答歌)란 ‘서로 한마디씩 마음의 선물을 주고받는 노래’를 가리키는 것으로 퇴계는 한번은 자신이 매화의 입장에서 한번은 매화와 이별하는 주인의 입장에서 노래하였던 것이다.
먼저 주인의 입장에서 퇴계는 이별하는 매화를 향해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다행히 이 매선이 나와 함께 서늘하여(頓荷梅仙伴我凉)
객창이 소쇄하여 꿈마저 향기로워라.(客窓蕭灑夢魂香)
동으로 돌아갈 제 그대와 함께하지 못하니,(東歸恨未携君去)
서울 티끌 이 속에서 고이 간직하여다오.(京洛塵中好艶藏)”
퇴계가 쓴 이 영매시(梅詩)를 통해 정확히 알 수 있는 것은 8개월간의 객지생활에서 유일하게 객창을 상쾌하게 달래준 것은 오직 매화의 신선인 그대뿐임을 명백하게 밝히고 있다는 사실이다.
2006-08-03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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