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퇴계의 위로는 맹자가 ‘고자장 하편’에서 ‘하늘이 장차 큰 인물을 이 사람에게 내리려 할 때에는 반드시 그 마음을 괴롭게 하며, 그 신세를 수고롭게 하며, 그 몸을 굶주리게 하며, 그 몸을 궁핍하게 하여 행하는 바를 어그러지게 함이요, 이것은 마음을 분발시키고 성질을 참게 하여 그 능하지 못한 바를 보태주고자 함이다.’라고 한 말을 상기시킴으로써 율곡을 오히려 분발하게 하려는 뜻이었으나 이 무렵 율곡은 실로 사면초가에 봉착하고 있었던 것이다.
폐병을 앓는 아내와 굶주림과 추위에 떨고 있는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과거에 급제해야 하는 절박한 처지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절박한 심정은 이 무렵 율곡이 지은 시에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강릉에 머물고 있을 때 율곡은 지정(智正)이란 산인(山人)을 만난다. 아마도 율곡이 금강산에 입산수도하고 있을 때 만났던 사람으로 스님은 아니었고, 산중에 살고 있던 거사처럼 보여진다.
두 사람은 함께 술을 마시다가 서로 불교와 유교에 대해서 토론을 하는데, 이 토론의 내용이 ‘산인 지정에게 주다(贈山人智正)’라는 시 속에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우리 유가에는 본래 참된 낙지(樂地)가 있어
외부의 물질을 꺾지 않고도 능히 본성을 기른다네.
고원(高遠)하거나 기이한 길, 다 중도(中道)가 아니라
자신에 돌이켜 성실하면 성인에 이를 수 있다오.…”
이 구절을 통해 이율곡은 이미 불교와 완전히 단절하고 스승 퇴계가 내려준 유가적 화두인 ‘거경궁리’에 완전히 몰입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즉 불교에서 말하는 욕계(欲界)와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의 삼계와 지옥(地獄), 아귀(餓鬼), 아수라(阿修羅), 축생(畜生), 인간(人間), 천상(天上)의 육도를 벗어나기 위해서 굳이 불교적 중도(中道)를 취하지 않더라도 ‘자신에게 돌이켜 성실하면 성인에 이를 수 있다.(反身而誠可醒聖)’는 유교적 진리를 주장하고 있음인 것이다.
토론 중에 율곡은 지정과 함께 술을 마시며 담소한다.
국화꽃 꺾어 꽃잎을 띄우며 술을 마셨는데, 이러한 풍습은 일찍이 도연명이 읊은 ‘동쪽 울타리 밑에서 국화를 딴다(採菊東籬下)’란 시구절을 인용하여 그대로 풍류를 즐긴 것이었다.
또한 전국시대 초나라의 비극적인 시인이자 정치가였던 굴원(屈原)이 남긴 ‘저녁에는 국화의 낙화를 먹는다(夕餐秋菊之落英)’는 사(詞)를 그대로 인용한 행동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국화꽃잎을 술잔에 넣어 마시던 청년 율곡은 문득 다음과 같은 시를 남긴다.
“서리 속의 국화를 사랑하기에(爲愛霜中菊)
노란 잎 따서 술잔에 가득 띄웠네.(金英摘滿觴)
맑은 향내는 술맛을 돋우고,(淸香添酒味)
수려한 빛은 시의 창자를 적셔 주기도 하네.(秀色潤詩腸)
도잠(陶潛)이 무심히 잎을 따고,(元亮尋常採)
굴원(屈原)이 잠시 꽃을 맛보았으나,(靈均造次嘗)
어찌 정담만 나누는 일이(何如情話處)
시와 술로 서로 즐기는 것만 하겠는가.(詩酒兩逢場)”
2006-05-18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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