儒林(549)-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39)

儒林(549)-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39)

입력 2006-02-28 00:00
수정 2006-0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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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39)

경(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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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가 말하였던 대로 성리학은 이(理)를 깨닫는 것이고, 그 이를 깨닫기 위해서는 ‘마음이 한 가지 일에 집중되어 흩어지지 않는 주일무적(主一無適)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주일무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경(敬) 속에서 정제엄숙(整齊嚴肅)해야 한다는 것이 퇴계의 가르침이었던 것이다.

경(敬)은 문자 그대로 사물을 공경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지극히 섬기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퇴계가 12살에 터득하였던 이(理)의 화두를 46년간 참구한 끝에 깨달은 진리의 골수였던 것이다.

퇴계는 죽기 2년 전 나이 어린 임금 선조를 위해 10가지 글과 그림의 성학십도(聖學十圖)를 써서 올린다.

이 성학십도는 퇴계의 대표적인 저술로 손꼽히고 있는데, 그 저술의 핵심은 ‘성학은 오직 경을 통해서만 그 근본정신을 체득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퇴계는 성학은 경학(敬學)이라고까지 결론을 내리고 ‘경이야말로 일심(一心)의 주재이며, 만사의 근본이다.’라고 선언하고 있다. 또한 퇴계는 ‘지극한 섬김’, 즉 지경(至敬)을 통하여 인(仁)을 구함으로써 성인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하고 경이야말로 성학의 처음이자 끝이라고까지 단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퇴계는 다시 말을 이었다.

“잘 들으시오. 움직이지 않는(靜) 가운데서 ‘주일무적’한 것은 경(敬)의 체(體)요, 움직이는(動) 가운데에서도 온갖 변화에 대응하지 않고서 그 주재자(主宰者)를 잃지 아니하는 것은 경(敬)의 쓰임새(用)인 것입니다. 오로지 경이 아니면 지선(至善)에 머무를 수 없고, 경 가운데에 반드시 지선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정(靜)은 마른 나무나 죽은 재가 아니며, 동(動)은 분분(紛紛)하고 소란(優優)스러운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동정(動靜)이 한결같고 체용(體用)이 서로 떠나지 않는 바로 그것이 지선인 것입니다.”

퇴계의 말은 율곡의 심장에 비수처럼 내리 꽂혔다. 그로서는 마침내 학문의 방향이 결정되는 운명적인 순간이었다.

훗날 율곡이 ‘내가 학문의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을 때 사나운 말처럼 이리저리 뛰고 하며 가시밭길의 거친 들에 있다가 방향을 고쳐서 옛길로 돌아오게 되었으니, 이는 실로 퇴계 선생의 계발에 힘입은 것이다.’라고 술회하였던 것처럼 가시밭의 거친 들에서 학문의 본길로 돌아오는 엄숙한 순간이었던 것이다.

머물러 있거나, 움직이거나, 잠들거나, 깨어 있거나, 말을 하거나, 밥을 먹거나, 공부를 하거나 마음은 시종여일하게 지경에 머물러 있어야만 마침내 마음의 근본이 이성(理性)을 깨달을 수 있음을 느낀 것이었다.

그러므로 율곡이 금강산에서 의심하였던 ‘모든 것은 하나로 돌아가는데 이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의 불교적 화두는 스승 퇴계의 가르침에 의해서 유교식으로 다음과 같이 타파되는 것이었다.

“모든 것은 하나로 돌아가는데 이 하나는 바로 이(理)다. 그렇다면 이 하나는 어디로 가는가. 그것은 바로 경(敬)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2006-02-28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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