儒林(534)-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24)

儒林(534)-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24)

입력 2006-02-07 00:00
수정 2006-0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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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24)

이러한 율곡의 결심은 ‘풍악산에서 본대로 기록하다(楓岳記所見)’라는 장시에 처음으로 드러나고 있다.

산 위에 올라가 이른 새벽 ‘동방이 온통 붉은 비단 속으로 들어가 아침노을인지 바다 빛인지 분별할 수 없는’ 찬란한 일출광경을 바라보면서 읊은 시 구절에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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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을 깨워 이 장관을 보게 하였던 스님이 ‘여기선 이 경내가 가장 절호한 곳. 세간은 어찌 신선과 범부 그 격차뿐이랴.’라고 감탄하였으나 율곡은 다만 이렇게 탄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아, 나는 아직 세속의 인연 다하지 않아

이곳에 살면서도 나의 즐거움 온전하지 못하네.

후년에 이 승유를 계속하게 되거들랑, 산 신령은 꼭 기억해 두기 부탁하오(嗟余俗緣磨不盡 不能棲此全吾樂 他年勝遊如可續 奇語山靈須記憶).”

이 구절은 다시 환속을 결심하는 율곡의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첫 장면이다.

하산을 결심한 이상 율곡은 지체 없이 이를 실행한다. 이때 율곡과 함께 동행한 사람은 보응(普應)스님. 그가 어떤 스님이었던가는 알려진 바가 없지만 ‘세속에 인연을 다하지 못한 율곡’을 데리고 함께 산을 내려와 이광문(李廣文)이라는 사람의 초당(草堂)에서 하룻밤을 묵는다.

이날 밤 율곡은 이 초당에서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불교와의 결별을 정식으로 선언한다.

“도를 배우니 곧 집착이 없구나(學道卽無著)

인연을 따라서 어디든지 유람하네(隨緣到處遊).

잠시 청학의 골짜기를 이별하고(暫辭靑鶴洞)

백구의 땅에 와서 구경하노라(來玩白鷗洲).

이내 몸 신세는 구름천리이고(身世雲千里)

하늘과 땅은 바다의 한구석일세(乾坤海一頭).

초당에서 하룻밤 묵어 가는데(草堂聊寄宿)

매화에 비친 달 이것이 풍유로구나(梅月是風流).”

이 시를 면밀히 검토해 보면 불과 1년여의 짧은 입산이었지만 불교에 심취하여 도를 추구함으로써 어느 정도 집착을 버리고 자유인이 될 수 있었음에 율곡이 스스로 자족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율곡은 이제 산에 있으나 저자거리에 있으나 별로 공간에 얽매이지 않는 초탈한 경지에 이르렀음을 고백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 인연을 따라 어디든지 유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몸은 비록 푸른 학이 머무는 청학동, 즉 금강산을 떠나지만 하얀 갈매기가 노니는 백구의 땅, 즉 강릉 외갓집에 있다하여서 무엇이 다를 게 있겠는가. 자신의 몸은 떠돌기가 천리 길이요, 저 광활한 땅과 하늘도 결국 바다와 붙어있지 않은가.

어쩌면 우리들의 인생이란 이처럼 낯선 초당에서 묵어가는 하룻밤과 같은 것. 그렇다고 해도 창밖에는 푸른 달 아래 매화꽃이 피어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풍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다.
2006-02-07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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