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가 제나라의 선왕에게 얼마나 큰 기대를 갖고 있었는가는 제나라의 신하 경추(景丑)가 맹자에게 “신은 왕(선왕)께서 선생을 공경하는 것은 보았지만 선생이 왕을 공경하는 것은 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말하였을 때 맹자가 정색을 하고 다음과 같은 대답을 했던 것으로 잘 알 수 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제나라 사람 중에 인의(仁義)를 가지고 왕과 더불어 말할 사람이 하나도 없는데, 이는 인의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고 여겨서가 아닐 것이다. 너희들 마음속에 제나라 왕 같은 사람과는 인의를 말할 가치가 없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너희 제나라 사람들이 이처럼 자신의 왕을 무시하는 것이야말로 공경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나는 요순의 도가 아니면 왕 앞에서 말한 적이 없다. 나는 제나라의 왕이 요순의 도를 행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본다. 이것이 왕을 공경하는 마음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실대로 말하면 너희 제나라 사람 중에는 내가 왕을 공경한 것처럼 공경하는 사람은 없다.”
이 답변은 맹자가 선왕이야말로 요순의 도인 왕도정치를 펼칠 수 있는 적임자로 보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는 단적인 예인 것이다.
따라서 맹자가 제나라의 국경에서 3일 동안이나 머물러 있었던 것은 선왕이 크게 후회하고 자기를 다시 불러들일지도 모른다는 미련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맹자의 환상이었다. 물론 맹자를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그가 바로 순우곤이었다.
그러나 순우곤은 선왕의 사신으로 맹자를 다시 불러들이기 위해서 찾아온 것이 아니라 초라한 모습으로, 말은 자진출국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쫓겨나고 있는 맹자의 모습을 조롱하기 위해서 찾아온 것이었다.
순우곤으로서는 맹자가 스승 공자처럼 ‘상갓집의 개’가 되어 피로하고 지친 모습으로 출국하는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순우곤은 일찍이 맹자와의 설전에서 비참한 패배를 맛보지 않았던가. 일생일대의 유일한 패배를 순우곤은 몽매에도 잊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순우곤은 맹자를 위로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맹자의 처지를 비웃고 조롱하며 맹자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하기 위해서 일부러 찾아온 것이었다.
맹자도 순우곤의 예방을 받자 정중하게 그를 맞아들였으나 이미 순우곤의 속셈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두 사람은 두 번째로 날카로운 논전을 벌인다. 전국시대 최고의 말재주꾼 순우곤과 전국시대 최고의 사상가인 맹자의 설전은 오랜 복수를 꿈꾸던 순우곤의 예봉을 다시 한번 여지없이 강타하는 맹자의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느끼게 하는 명장면이다.
이 장면의 시작은 순우곤의 질문에서부터 비롯된다. 이 장면이 맹자의 ‘고자장구하편’에 수록되어 있다.
“순우곤이 말하였다.
‘명예와 실적을 중시하는 것은 남을 위한 것이고 명예와 실적을 경시하는 것은 자기를 위한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삼경(三卿)가운데 계셨으나 명예와 실적이 위와 아래에 모두 더해지지 아니하였는데, 그런데도 이처럼 떠나시니 어진사람도 본래 이와 같습니까.’”
순우곤의 말은 촌철(寸鐵)이었다. 비록 작고 짧은 질문이었지만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살기마저 띤 공격이었던 것이다.
2005-08-16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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