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특별취재팀|올해 일본 외교의 출발 소리는 요란했다.‘국민을 지키는 외교’‘선두에 서는 외교’‘주장하는 외교’‘저력있는 외교’.
이런 정책방향에 따라 일본은 연초부터 한국과 중국, 러시아, 타이완 등 주변국과 영토 분쟁을 불사했다. 역사교과서 채택과 야스쿠니신사 참배 등의 역사문제로 한국과 중국을 자극했다. 저력을 발휘, 선두에 서기 위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을 목표로 엔화를 쏟아부었다. 국제외교 무대에서도 일본 입장을 강력히 전개했다. 하지만 패전 60주년인 현재 일본외교는 6자회담에서, 유엔에서, 국제외교무대에서 더욱 고립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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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외교에서 우익의 영향력은 큰 편이다.특히 2002년 9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일본인 납치 사실을 인정한 뒤 우익들은 더욱 극성이다.한 우익단체가 일본외교의 사령탑인 외무성 앞에서 확성기를 이용,힘의 외교를 펼칠 것을 촉구하는 방송을 내보내고 있다. 도쿄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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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외교에서 우익의 영향력은 큰 편이다.특히 2002년 9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일본인 납치 사실을 인정한 뒤 우익들은 더욱 극성이다.한 우익단체가 일본외교의 사령탑인 외무성 앞에서 확성기를 이용,힘의 외교를 펼칠 것을 촉구하는 방송을 내보내고 있다. 도쿄 특별취재팀
일본은 패전 이후 60년간 와신상담, 패전국의 멍에를 떨쳐내기 위해 때론 속내를 숨기며, 때론 정면으로 힘을 내세우는 외교전략을 펼쳤다. 특히 패전 60주년을 앞두고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에 진출, 강한 외교력을 행사하려는 의지가 무척 강했다.
●일본외교, 막다른 골목에 서 있다
하지만 일본외교는 점점 고립되는 양상이다. 후와 데쓰조 일본공산당 중앙위원회 의장은 일본외교가 막다른 골목에 서 있다고 표현한다. 한국·중국과의 관계는 물론 아시아 각 국들과 야스쿠니신사 참배나 과거사 문제 등으로 뒤틀려 있다고 진단한다. 즉 아시아 경시 외교로 인해 아시아에서 고립감만 깊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후와 의장은 “주변국과 평화적 관계를 설정하는 대전략을 가져야 한다.”고 일본외교의 방향 수정을 제시했다. 현재 일본외교는 이른바 아시아 전략이 없다는 비판을 듣는 만큼 “상대국이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 서로의 실정을 살피는 장기전략을 세워 (말만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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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언론들도 여름 들어 ‘시련의 일본외교’,‘위기의 일본외교’라고 진단한다. 조셉 나이 미 하버드대 교수는 “일본은 미국이란 후원자가 있기는 하지만, 동남아 국가들과 적극적인 접촉·교류를 도모해야 한다.”면서 이들 국가와의 문화교류 등을 통한 외교기반 강화를 주문했다. 역시 하버드대 이리에 아키라(미국사) 교수는 일본이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들과 ‘장래에 대한 비전’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면서 3국간 관계개선을 위해서는 민간 레벨의 접촉이나 교류가 불가결한 요소라고 제시했다.
●일본, 그래도 힘의 외교는 한다
일본정부는 그럼에도 힘의 외교를 고집하는 양상이다. 지난달 발표된 통상백서는 일본이 동남아국가연합(ASEAN) 역내 국가의 경제통합을 주도하고, 자유무역협정(FTA)을 축으로 무역과 투자활성화를 뒷받침할 제반 규칙을 조성해 나갈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일본의 힘으로, 중국의 힘을 제어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백서는 중국 경제 부상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일본 기업들에 아세안 국가 등으로 투자처를 다변화할 것을 강력히 주문했다.‘동아시아 투자의 일극집중(一極集中)’을 막아내야 할 사명이 일본기업에 있다는 것이다. 동아시아 패권을 중국에 양보할 수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외교는 돈의 힘을 앞세웠다. 지난해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직접 나서 올해 내 상임이사국 진출 의사를 천명했고, 올해 엔화를 앞세워 아프리카, 중남미 등 표밭 공략에 집중했지만 최근 들어 점차 좌절로 굳어지는 양상이다. 마치무라 노부다카 외상 등이 거부권이 있는 상임이사국 진출 꿈을 접을 수도 있다고 밝힌 것도 이런 기류를 반영한다.
●미국편향 외교 치열한 논란 유발
일본외교의 미국 편향성은 심각한 수준으로 우려된다. 사가키바라 에이스케 게이오대 교수는 화제를 불러온 저서 ‘경제의 세계세력도’에서 “일본은 반(半)주권국가로서 미국의 충실한 파트너 역할을 하려고 한다.”면서 “미국의 경제가 정체, 군사비를 견디지 못할 상황이 오거나 동아시아 안전보장에서 손 떼는 상황이 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면서 아시아 공동통화 등 아시아외교 강화를 주문했다.
도쿄대 대학원 후카가와 유키코 교수는 일본이 전후 경제·정치적으로 미국이나 아시아국가(중국) 중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할 운명이었다고 분석한다. 그런데 지금은 미국의 시대이고, 그래서 미국을 선택, 안보를 미국에 의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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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에야 요시히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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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에야 요시히데 교수
후카가와 교수는 “중국과 북한으로부터 심리적 압박을 받고 있는 일본은 지금 핵무장을 할 수 없으니 미국에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면서 “중국이 해군을 늘리는데 이런 위험에서 지켜줄 힘은 미국밖에 없다. 그래서 (승전국)미국에 대해 복잡한 심경으로 의지하고 있는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미들파워(middle power)라는 개념은 국가안보를 기준으로 한 것으로 ‘중급국가’로 번역되고 있다. 캐나다나 호주가 자신들의 외교를 표현하는 용어다. 일본에서는 소에야 교수가 ‘일본의 미들파워 외교’라는 저서에서 사용, 빠르게 퍼지면서 주목받고 있다.
소에야 교수는 국가들을 ‘슈퍼파워(초대국)’,‘그레이트파워(대국)’,‘미들파워’,‘스몰파워(소국)’라는 4개의 부류로 분류했다. 초대국은 현 시점에서 미국이 유일하고 냉전시대는 미국과 소련이었다고 분류한다.
국제정치의 기본적 질서를 구성하는 대국은 현재는 중국과 러시아를, 잠재적으로는 인도를 꼽았다. 인도는 국민 정서가 대국으로서의 발상을 하고 있고, 핵무기도 갖고 있어 독자적인 안보나 외교수행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대국은 아니지만 국제질서에 대해 일정 정도의 수정을 촉구하는 힘만을 가진, 독자적인 안보능력이 없는 나라인 미들파워로는 일본과 독일 등을 분류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영국과 프랑스는 대국과 미들파워의 중간단계로 분류했다.
■ 소에야 게이오大 교수 인터뷰|도쿄 특별취재팀|“일·미 안보조약이 일본안보의 요체이기 때문에 미국은 모든 일본외교의 기초입니다. 미국을 전제로 하지 않는 일본외교는 없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일본을 어떻게 볼 것이냐는 논의의 시발점이 됩니다.”
게이오대학 법학부 소에야 요시히데 교수의 전공은 일본외교이다. 그는 요즘 들어 고민이 적지 않다. 일본외교가 올 한해 6자회담이나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외교 등에서 고립돼 있다는 지적을 받기 때문이다. 도쿄시내 한 호텔에서 그를 만났다.
▶일본이 힘의 외교를 추구한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일본내의 혁신세력이나 한국, 중국 등에서 보면 힘의 외교를 하고 있다고 비쳐질 것이다. 일본이 2차대전 패전 전에는 대국으로서 힘의 외교를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전후는 다르다. 힘의 외교를 할 수 없게 됐다. 한국인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전후 일본외교는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기본 스탠스다.
▶일본이 아시아 경시외교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은데.
-대미관계가 일본외교의 기본전략이다. 좌, 우로부터 비판이 있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우파들이 요구하는 미국으로부터의 외교적 독립은 미국측이 허락하지 않을 것이고, 좌파들이 요구하는 비무장 중립국도 현실성이 없다. 전후 일본의 불행은 대미의존이 지나치다는 점이다. 아시아 외교도 대미동맹을 전제로 전략을 짤 수밖에 없는 처지다.
▶주변국과 마찰의 원인은 무엇인가.
-역사문제이다. 일본이 전전 대국으로서 힘의 외교를 했고, 그런 인식이 한국인들에게 지금도 남아 있다. 반성하지 않고, 역사를 잊고, 대국외교를 하려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그래서 주변국민들의 두려움이 있는 것이다. 역사문제는 전략적인 문제로 충돌하는 경향이 강하다. 같은 입장을 가진 각 국의 시민단체들이 해결하면 빠르다. 일본의 역사문제 대응은 지금보다 더 전략적이어야 한다.
▶일본이 외교적으로 고립돼 있는데.
-6자회담에서 일본이 납치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납치문제가 국내정치 문제이긴 하나, 외교가 국내정치와 별개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일본정부는 북핵문제 해결 얘기만 하려고 했다. 하지만 국내정치도 현실인데 어쩌겠나.
▶일본이 돈 외교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일본이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에 들어가려고 ‘와이로(뇌물) 외교’를 하는 것은 아니다. 빈곤타파와 인간안전보장을 위해 정부개발원조(ODA)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얘기는 비판을 위한 비판이다. 일본이 전후 60년간 평화외교를 했다는 사실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것은 ‘일본의 노력부족’에도 원인이 있다고 본다.
▶일본외교의 돌파구는 무엇인가.
-일본 국내여론을 좌나 우로 일방통일은 못한다. 우로 하면 중국은 물론 미국도 반대한다. 따라서 일·미 동맹을 전제로 한국이나 동남아국가들과 상호 협력하는 ‘미들파워(중급국가) 외교’를 해야 한다. 특히 평화주의자들이 개헌론을 제기, 현실적 모순을 없애주면 5∼10년 뒤엔 일본외교가 움직이기 쉬워질 것이다. 평화주의자들의 개헌론은 우익들과는 다르다. 최소한의 부분만 고쳐도 좋다.
taein@seoul.co.kr
2005-08-15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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