儒林(387)-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13)

儒林(387)-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13)

입력 2005-07-13 00:00
수정 2005-07-13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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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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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공자가 사십대에 이르기까지 그의 고향 노나라에서 사(士)의 직업에 종사하면서 유(儒)라는 신분을 바탕으로 그의 제자들과 함께 학문에 전념하여 유가(儒家)를 이룩하기 시작한 면학시기를 거쳤다고 하면, 맹자도 사마천의 기록처럼 공자의 손자인 자사의 문하에 들어가 유가를 배우고 자신을 공자의 계승자로 생각하는 면학시기를 거친 듯 보인다.

또한 공자가 55세 때의 나이에 노나라의 대사구란 벼슬을 집어던지고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할 나라와 임금을 찾아 13년 동안이나 주유하였던 제2기를 보냈던 것처럼, 맹자도 사기에 기록된 대로 제(齊) 양(梁) 진(秦)나라를 돌아다니며 공자처럼 ‘제왕의 덕’을 부르짖으며 순회하였던 주유시기를 거친다.

공교롭게도 13년에 걸친 천하주유에도 불구하고 ‘상갓집의 개(喪家之狗)’처럼 현실정치의 벽에 부딪쳐 초라하게 고향으로 돌아온 공자처럼 맹자도 사마천의 기록대로 ‘하는 말들이 너무 멀어서 현실사정에 어둡다고 생각한’ 군주들과 ‘전쟁에 미쳐 날뛰는 광분을 현명한 일로 생각하는’ 당시 시대상황에 막혀 ‘어디서 말을 하여도 용납되지 않았던 맹자’는 하는 수 없이 공자처럼 고향으로 초라하게 돌아오는 운명을 겪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공자가 68세 때에 고향으로 돌아와 73세에 죽을 때까지 6년간 오로지 제자들을 가르치며 동양정신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저술에 전념함으로써 지성에 이를 수 있었던 제3기의 은둔 강학기를 거쳤다면, 맹자도 사마천의 기록처럼 언제인지는 불분명하지만 ‘물러와서 만장을 비롯한 제자들에게 시경과 서경을 강술하며 교육에 전념’하는 한편 공자의 뜻한 바를 펴서 역시 유가의 교과서인 맹자를 펴냄으로써 아성에 이를 수 있는 생애를 보낸 것이다.

이처럼 공자와 맹자는 1세기의 시대적 차이만 있을 뿐 일란성 쌍둥이와 같은 비슷한 생애를 보내는 것이다.

맹자도 엄격한 어머니의 훈도를 거쳐 자사에게서 유가를 배움으로써, 일찍부터 명성을 떨쳤던 듯 보인다.

30대에 멀리서부터 유가를 배우러 제자들이 쇄도하였던 공자처럼, 맹자도 추나라의 고향에 머물러 있을 때 이미 당대의 스승으로 손꼽히고 있었다. 맹자의 이런 면학시기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없지만 ‘고자(告子) 하편’에 나오는 내용을 보면 이미 맹자는 그 무렵 사방에 명성을 떨치고 있어 다른 나라에서까지 학생들이 찾아와 배움을 청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음인 것이다.

어느 날 맹자의 고향인 추(鄒)나라의 바로 옆에 있던 임(任:오늘날 산둥성 지닝현에 있던 소국)나라 사람 옥로자(屋盧子)가 맹자를 찾아온다.

옥로자는 그 무렵 제법 유명하던 학인처럼 보이는데, 어느 날 자신을 찾아온 사람과 토론을 벌이다가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만다. 그 토론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 사람이 옥로자에게 물었다.

‘예를 지키는 것과 먹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예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러자 그 사람은 다시 묻는다.

‘여색(女色)을 추구하는 것과 예를 지키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옥로자는 대답한다.

‘예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2005-07-13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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