儒林(375)-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1)

儒林(375)-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1)

입력 2005-06-27 00:00
수정 2005-06-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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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1)


서기전 479년.

공자가 73세의 나이로 고향 노나라에서 죽은 이래로 유교는 점점 쇠락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이에 대해 사마천은 ‘사기’에서 다음과 같이 탄식하고 있다.

“공자가 사거한 뒤에는 왕도에서도 학교수업을 존중하는 사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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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를 존경하여 냉정한 사필을 가졌으나 공자에 대해서는 극찬하였던 사마천. 사마천은 공자의 생애를 다룬 ‘공자세가’의 집필을 끝낸 후 다음과 같은 소감을 후기로 남기고 있다.

“나 태사공은 이렇게 생각한다.

시경(詩經)에 보면 ‘고산을 우러러 보면서 대도로 나아간다.’고 되어있다. 도달할 수는 없더라도 마음은 저절로 그쪽으로 향한다는 뜻이다. 나는 공자의 저서들을 읽으며 그의 인품을 생각해보았다. 노나라로 직접 가서는 그의 묘당에 있는 거복(車服)과 예기(禮器)도 보고 여러 유생들이 공자의 옛집에서 예를 익히는 것도 구경했다.

나는 주위를 거닐면서 차마 그곳에서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사실을 감지했다. 천하의 어떤 군주나 현인들도 살아서는 영화를 누렸겠지만 죽어서는 그 영화도 끝났었다. 그렇지만 공자는 포의(布衣)의 신분이었으면서도 덕은 10여대에 걸쳐 전하고 공자를 종주(宗主)로 우러러보고 있는 것이다. 천자나 제후들을 비롯해 중국전역에서 육예를 논할 때에는 모두 공자를 표준으로 취사선택하니 과연 공자를 지성(至聖)이라 부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일찍이 아버지 사마담(司馬談)은 병석에 누워 위독해지자 사람을 시켜 아들 사마천을 급히 낙양으로 오게 한다. 그리고 아들에게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긴다.

“주공이 서거한 지 500백년 만에 공자는 ‘춘추’를 저술하여 끊겼던 사기의 전통을 되살렸다. 이제 공자가 사거한 지 500백년. 그동안 명군 현신과 충신 의사가 수없이 많았다. 나는 사관의 자리에 있으면서 그들의 족적을 기록할 결심이었으나 급병이 들어 세상을 뜨니 나를 대신하여 네가 그 기록을 남겨 내 한을 풀어다오.”

이에 사마천은 아버지에게 맹세한다.

“불민한 자식이오나 삼가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겠습니다.”

그 후 사마천은 남성으로 가장 치욕적인 궁형의 쓰라림을 굳게 딛고 아버지의 간절한 유조를 끝내 실천에 옮긴다. 이것이 동양최고의 역사서이자 철학서, 그리고 불후의 문학작품인 ‘사기’였던 것.

냉정한 사가 사마천이 그토록 공자를 존경하였던 것은 아버지의 유언대로 주공이 사거한 지 500백년 후에 중국최초의 역사서인 춘추를 지었고, 춘추를 제자들에게 전해주면서 ‘후세의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는 것도 춘추를 통해서이고, 나를 죄주게 되는 것도 춘추를 통해서일 것이다.’라는 말을 남김으로써 ‘춘추필법(春秋筆法)’의 직필을 보여준 때문일 것이다.

사마천 자신도 공자의 사후 500백년 후에 태어나 ‘사기’를 편찬하였으니, 사마천은 아버지의 유언대로 ‘춘추’이후 끊겼던 역사를 복원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난 제2의 공자라고 자신을 자부하였을지도 모른다.

그런 이유로 인해 사마천은 ‘사기’에 등장하는 수백 명의 인물 중에서 가장 공자를 존경하여 감히 지성, 즉 지와 덕을 아울러 갖추어 더없이 뛰어난 성인으로까지 공자를 칭송하고 있는지 모른다.
2005-06-27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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