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전하고 있는 동종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한국 특유의 형식을 갖고 있으며, 뛰어난 주조 기술과 조각 수법을 보여주는 명종이었다.
통일신라시대 때인 성덕왕(聖德王) 24년(725년)에 만들어진 범종으로 용뉴(龍) 좌우에 종명(鐘銘)이 새겨져 있어 조성 연대가 확실하게 알려져 있다. 종신에는 서로 마주보는 두 곳에 구름 위에 서서 무릎을 세우고 공후와 생(笙)을 연주하는 비천상(飛天像)이 양각되어 있다. 바로 이 동종이 죽령에 이르렀을 때 5백 명의 장정들과 말 백 필이 끌어당겨도 제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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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오면 나으리,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자 운종도감이 처음에는 고개를 넘느라 힘이 빠져서 그렇겠지 하고 생각하였으나 닷새가 지나도 움직이지 않자 묘책을 강구했다 하나이다. 그 이야기에 대해서도 알고 계시나이까.”
“글쎄, 그 이야기는 들은 것 같기도 하다만 하도 옛 기억이라 가물가물하니 네 입으로 말해 보도록 하여라.”
“나으리.”
무릎을 꿇고 앉은 두향이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갖가지 묘책을 찾았으나 방안이 없어 초조해하던 중 마을의 촌로 하나가 찾아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하나이다.
‘백 살을 못 사는 사람도 생이별을 서러워하거늘 하물며 800살이 넘어 숱한 애환을 지닌 범종이 이 죽령을 넘으면 다시는 못 볼 고향이 아쉬워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말입니다.”
퇴계는 묵묵히 두향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순간 퇴계는 두향이가 방금 전에 쓴 ‘백 년을 못 사는 인생 이별 더욱 설워라.(何須相別何須苦 從古人生未百年)’란 송별시의 한 구절이 바로 동종에 얽힌 고사에서 인용하여온 문장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제자리에서 꼼짝하지 않은 것은 이처럼 상원사의 동종뿐이 아니나이다. 나으리, 나으리께오서는 송도 기생 황진이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으시나이까.”
“들은 바 있다.”
퇴계는 머리를 끄덕여 대답하였다.
황진이(黃眞伊).
서경덕, 박연폭포와 더불어 송도삼절(松都三絶)로까지 불리었던 황진이는 전 임금이었던 중종 때의 기생으로 10년 동안이나 수도하여 생불이라 칭송받던 지족 선사를 유혹하여 파계시키고, 당대의 성리학자 서경덕을 유혹하려다가 실패하여 스승과 제자를 맺은 소문이 자자하였던 명기였다.
“나으리, 황진이는 15세 무렵에 동네 머슴이 연모하여 상사병으로 죽자 그 길로 기계에 투신하였다고 하나이다. 그런데 황진이 집 앞을 지나는데, 상여는 그 자리에 멈춰 꼼짝도 하지 않았다고 하더이다. 마치 죽령고개에 닷새간이나 멎어 꼼짝하지 않았던 동종처럼 옴짝달싹하지 않았다고 하더이다. 그 상여가 어찌하여 움직였는지 그 소문은 알고 계시나이까.”
퇴계는 묵묵부답이었다.
“소첩이 대신 말씀드리겠나이다. 황진이가 자신이 입던 속치마와 저고리를 벗어 관위를 덮자 비로소 상여가 움직이기 시작하였다고 하는데, 이는 황진이의 속곳이 머슴의 넋을 달래 주었기 때문이나이다.”
2005-04-18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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