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기다리는 사람, 공자에 대한 오해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초나라의 현인으로 알려진 미생묘란 사람이 이 무렵 공자에 대해서 혹평을 서슴지 않았는데, 그 내용이 논어에 다음과 같이 나오고 있다.
“공구는 무엇 때문에 악착같이 서성거리며 살고 있는가(丘何爲是栖栖者與). 말재주를 피우고 있는 것이 아니냐.”
미생묘가 말하였던 서서(栖栖)의 뜻은 몹시 분주하게 정신없이 살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말로, 마음이 급하여 허둥지둥하며 어찌할 줄을 모르는 ‘황황망조(遑遑罔措)’와 같은 의미인 것이다. 따라서 이 말은 공자를 비웃는 표현의 극치였다. 그러나 이 말을 들은 공자는 담담하게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감히 말재주나 피우려는 것은 아니다. 세상이 고루함을 가슴 아프게 여기고 있을 따름이다.”
어쨌든 공자는 더 이상 초나라에 머물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또다시 위나라로 출발하는데, 이미 세 번이나 찾아갔었던 위나라를 찾아간다는 것은 그 무렵 공자의 생활이 얼마나 여의치 않았는지를 말해주는 단적인 예인 것이다.
공자가 또다시 위나라를 찾아갔을 때에는 노나라의 애공 6년(기원전 489년) 공자의 나이 63세 때였다.
56세에 시작된 주유천하가 이미 8년째에 접어든 종반기 무렵이었는데 공자는 물론 제자들도 모두 지쳐 있었다. 스승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던 제자들은 극도의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으나 공자가 다시 위나라에 입국했을 무렵부터는 각자 자생하여 자구책을 모색할 때였다.
제자들은 더 이상 스승에게 의지하지 않고 하나씩 하나씩 떨어져 나가 독자적인 활로를 개척하는 시기였던 것이다.
공자가 위나라에 입국했을 때는 그나마 공자를 우대하였던 영공은 이미 죽고 그의 손자인 출공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었다. 원래는 태자 괴외가 계승하여 왕위에 오르는 것이 법도였으나 아버지의 음탕한 부인인 남자를 죽이는 것에 실패하고 외국으로 도망쳤다가 돌아오려는 것을 무력으로 막은 사람이 바로 출공이었던 것이다.
행여 왕위를 빼앗길까 하여 외국으로 망명해 있다가 돌아오는 아버지 괴외의 귀국을 무력으로 막았던 출공의 무례를 열국의 제후들은 자주 꾸짖고 있었다.
그러므로 위나라로 돌아가는 스승에게 제자들은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래도 지금까지 예를 보면 위나라에서만큼은 공자가 제대로 대접을 받았고 출공 역시 제후들의 비난을 벗어나기 위해서 공자를 등용하여 이를 모면하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사기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출공은) 공자의 보좌를 받아 정치를 잘해 보려고 하던 참이었다.”
그러므로 이번 기회야말로 공자가 등용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그러나 제자들은 기대를 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불안하였다.
평소에 불의를 좇지 아니하는 스승의 성품을 봐서 출공의 제의를 선뜻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었다. 기대 반 불안 반의 아슬아슬한 제자들의 심경이 논어에 다음과 같은 장면으로 등장하고 있다.
스승 공자가 위나라에서 출공의 제안을 받아들여 벼슬에 나설까 말까 하는 의문에 사로잡힌 제자들 중 먼저 염유(有)가 말을 꺼내었다.
“선생님께서 이번에는 위나라의 임금을 위해 일을 하실까요.”
2004-12-03 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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