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이로서 공자는 5년 동안에 걸친 정치가로서의 황금시대를 스스로 마감하고 노나라를 떠나 열국을 순회하는 고난시대로 들어서게 된다.
대사구의 재상 직을 버린 것은 55세 때였고,자기의 이상을 정치적으로 실현할 나라와 임금을 찾아 국외로 여행길에 오른 것은 56세 때였다.그 뒤 다시 노나라로 돌아온 것은 기원전 484년,노나라의 애공 11년.공자의 나이 68세 때였으니,공자는 실로 13년 동안이나 열국을 주유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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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13년 동안의 세월은 공자의 황금시절과는 전혀 다른 문자 그대로 가시밭길이었다.대 사상가 공자가 어째서 13년 동안이나 훗날 자신의 신세를 ‘상갓집의 개’인 ‘상가지구(喪家之狗)’로 표현할 만큼 초라한 신세로 주유천하를 하였던가는 실로 미스터릭한 일로 느껴진다.
노나라를 떠나면서 태사 기에게는 ‘모름지기 군자는 멀리 (속세를 떠나) 도망가서 여생을 한가롭게 지낼 뿐’이라고 노래하면서도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세상의 바다 속에 뛰어들어 모진 고초를 받았던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굳이 말하자면 ‘화광동진(和光同塵)’,즉 ‘빛을 부드럽게 하여 속세의 티끌과 함께한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마치 부처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 그 본색을 숨기고 인간계에 나타나고 예수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사람의 아들이 되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다시 부활하여 인간이 죽음을 물리칠 수 있음을 보여주었듯이 공자가 13년 동안의 가시밭길을 주유열국 하였던 것은 속세의 티끌과 같이하려는 구법행위가 아니었을까.
아이로니컬하게도 ‘화광동진’이란 말은 공자 당대의 최고의 라이벌인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그 이목구비를 막고 그 문을 닫아서 날카로운 기운을 꺾고 혼란함을 풀고 지혜의 빛을 감추고(和其光),속세의 티끌과 함께하니(同其塵) 이것을 현동(玄同)이라고 말한다.그러므로 친해질 수도 없고 멀어지지도 않는다.이롭게 하지도 않으며 해롭게 하지도 못한다.귀하게 할 수도 없고 천하게 할 수도 없다.그러므로 천하에 가장 귀한 것이 된다.”
무릇 성인들은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뛰어넘는 형극(荊棘)의 가시밭길 끝에 완성되는 것.
13년에 걸친 주유열국의 고난시절은 공자의 사상을 완성시킨 부처의 설산(雪山) 고행과 예수의 무거운 십자가와 같은 것이 아닐까.
노나라를 떠나 홀연히 자취를 감춘 공자의 마지막 모습에 대해서 사기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공자를 전송하였던 태사 기가 돌아오자 계환자가 물었다.
‘어떻게 되었는가.’
이에 기가 대답하였다.
‘떠나지 말라고 말렸는데도 기어이 떠나가고 말았습니다.’
‘그래 뭐라고 하던가.’
그러자 태사 기는 공자와 있었던 일을 사실대로 말했다.자초지종을 들은 계환자는 한숨을 쉬면서 중얼거렸다.
‘역시 선생은 예기들의 문제를 걸어서 나를 질책하신 것이다.’”
공자가 떠난 후 노나라는 공자의 예언대로 기울어진다.이것을 상징하듯 사기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그 여름에 노의 환공(桓公),이공(釐公)의 무덤에서 불이 났다.남궁경숙이 그 불을 껐다.”
남궁경숙은 공자와 함께 노자를 만나러간 사람.공자의 노래 ‘나라의 기둥들이 저 꼴이라면 남은 것은 오로지 파멸일 뿐’이라는 구절처럼 노나라는 마침내 파멸의 길로 접어들게 되는 것이다.
2004-10-11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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