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여름 신촌.대학원 동기와 소주 다섯 병째를 들이붓고 있을 무렵,옆에 있던 내 동기의 애인은 나를 불쌍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그러고는 잠시 후,흐릿하게 눈을 떠보니,그녀의 고교 동창생이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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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훈·한덕화 강창훈·한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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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훈·한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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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한 키에 귀여운 얼굴….’ ‘흰 원피스에 남색 물방울무늬‘.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내가 다시 한번 얼굴을 들어 앞을 바라보았을 때,그녀는 약간은 상기된 웃음을 지으며 다 식어빠진 김치찌개와 파전을 반찬삼아 공기밥을 먹고 있었다.그날 밤의 기억은 이게 전부다.
2주가 흐른 후 일요일 오전,갑자기 그때 본 그녀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밀려왔다.용기를 내어 전화를 걸었다.“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만날 수 있을까요?” 잉? 갑자기 웬 단도직입? 중요한 순간에 이런 문어체적이고 어색한 표현이 내 입에서 튀어나오다니….그러나 잠시 후 “예!”라는 잠 덜 깬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들려 왔을 때야 비로소 안심할 수 있었다.
우리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나중에 그녀를 통해 들은 이야기지만,우리가 신촌에서 처음 만난 날,그녀는 남색 투피스에 흰 꽃무늬 옷을 입고 있었다고 한다.그리고 노래방에 가서 디제이덕의 ‘허리케인 박’을 불렀는데,나의 이 기막힌 노래 솜씨(?)에 그녀는 반했다고 한다.그녀도 제정신이 아니었나 보다.서로의 빠듯한 생활 속에서도 81일 동안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만나는,그야말로 전대미문의 대기록을 세웠다.
이듬해에는 약혼을 했고,2001년 겨울 그녀가 파리 유학 중일 때는 잠시 그쪽으로 날아가 박신양과 김정은이 꽤나 폼나는 척하며 거닐던 파리 거리를 먼저 휩쓸기도 했다.
그러던 그녀가 나를 찼다.아무리 매달리고 애원해도 소용없었다.하지만 나는 그녀가 밉지 않았다.내가 미워서가 아니라,나를 자신의 고통 속으로 끌어들이고 싶지 않다는 낭만의 투사 같은 이유였으니까.그로부터 나의 방황이 시작되었다.
마침내 2년이 흐른 올해 여름,새벽 늦은 컴퓨터에 메신저가 떴다.우리는 다시 만났다.헤어져 있던 세월에 대해서 우리는 서로 설명하지 않았다.다만 이제는 두 번 다시 헤어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덕화야,우리 이제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
2004-09-16 3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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