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인적자원부가 발표한 ‘2008년 대입제도 개편안’에 대해 전국의 교육현장에서는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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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교육 1번지’라는 서울 강남의 휘문고와 다소 여건이 못 미치는 서울 강북의 창동고,지역의 비평준화 명문인 경북 포항고,농어촌특례입학 혜택을 받는 전남 장성고를 찾았다.
서울 강남은 “큰 변화가 있겠느냐.”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반면,서울 강북은 “내신의 불이익이 조금 해소되지 않겠느냐.”며 그래도 다소의 기대는 거는 모습이었다.
고장의 인재를 ‘싹쓸이’하다시피 하던 지역 비평준화 명문고는 “내신 비중이 완화되면 우수 신입생 받기가 어려워진다.”고 불만스러워했지만,농어촌 고교는 “이제 도시로 갈 필요가 없다.”며 환호성을 질렀다.국민 모두가 만족하는 교육정책을 세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강남 “상위권대 면접·논술 강화될것”
“내신 반영 강화가 교육 현장에 힘을 실어준다고요? 글쎄요,결국은 큰 변화 없이 똑같을 겁니다.결정권은 여전히 대학에 있으니까.”
27일 낮 서울 강남구 대치동 휘문고에서는 선생님 3명이 복도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이들은 대입 개선안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3학년 담임 교사는 “교육부 의도가 좋다는 것은 알겠다.”면서도 “대학들의 공교육 불신증,내신 불신증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숨을 쉬었다.그는 “문제는 대학이 새로운 제도를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달려 있고,진학담당 교사는 따라갈 수밖에 없다.”면서 “올해 한양,서강,성균관,고려대 등 상위권 대학이 면접·논술을 부쩍 본고사화하는 경향이 강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휘문고 진학지도 담당 이신배(48) 교사도 “내신은 아무리 높게 반영해도 변별력이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실제로 이 교사가 보여준 3학년 학급의 성적자료는 600점 만점으로 환산한 1등과 30등의 내신 점수가 거의 차이가 나지 않았다.그는 “서강대 기준으로 1000점 만점에 겨우 6점 차이”라면서 “점수 비중이 적은 면접·논술이 비중 높은 내신보다 당락을 좌우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사들은 사교육 문제도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지금도 강남의 학원들은 ‘고려대 경영학과 수시반’ 하는 식으로 학생들을 모집하는 만큼 이런 세분화·전문화 강의 경향이 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독서 등 비교과영역을 강화하는 방안에 한 교사는 “이상적이긴 하지만 평가를 엄하게 해 자기 학생을 불이익받게 할 학교가 없을 것”이라면서 “역시 변별력이 없다.”고 말했다.내신을 강화함에 따라 ‘치맛바람’을 걱정하는 시각에는 “내신이 변별력을 가지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면 그런 일이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강북 “내신 불이익 조금 해소”
서울 도봉구 창동고 교사들은 내신 반영에서 조금 유리해질 것이라고 기대하면서도 논술 및 면접이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에는 우려도 컸다.
3학년 부장 한홍열(49) 교사는 일단 개선안이 도봉·노원·강서·남부지역 등 경제적으로 다소 소외된 지역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평가했다.그는 특히 “내신 강화와 독서지도 등은 부모의 경제력·사회적 지위에 의한 교육기회 격차로 소외받던 학생들에게는 많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대학의 학생 선발 방식은 어느 정도 교육당국이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면서 “마냥 대학 자율에 맡겨버리면,이를테면 과외가 필요한 논술·면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흐를 우려가 있다.”고 교육부에 개선안의 ‘보완’을 요구했다.
3학년 수학 담당 노현준(49) 교사는 “내신도 이미 대학들이 암암리에 고교를 서열화해 놓고 있는 상황에서 크게 유리할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면서 “대학 나름의 선발 기준이라고 하는 것도 결국 고교 서열의 반영이 아니겠느냐.”고 되물었다.
●지역명문 “내년부터 큰타격”
비평준화 지역인 경북 포항의 명문 포항고 고백순(40) 진학담당교사는 “수능 및 내신성적이 등급화되면 성적 우수 중학생들이 내신등급의 하락을 우려하여 다른 고교를 지원할 것”이라면서 “당장 내년부터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수능시험 비중을 낮추는 정부의 이번 방안은 학생들의 수능성적 향상에 치중했던 명문고에는 결정적으로 불리하다.”고 지적했다.그는 “해마다 서울대를 비롯한 명문대에 전체 3학년 학생 410여명 가운데 120여명을 진학시켰다.”면서 “우수학생 유치가 여의치 않으면 진학률은 크게 떨어질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그는 “명문고의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내신 부풀리기’를 제도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방안이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어촌특례고 “날개 달았다”
전남 장성고 이창운(42·국사) 진학부장은 올해 서울대가 농·어촌 각 고교에 3명씩 추천권을 주고 내신성적으로 선발하는 지역균형선발제를 첫 실시하는 데다,농·어촌 특례입학을 정원의 3%에서 4%로 확대한다는 발표가 나오자 “농·어촌 학교는 이제 날개를 단 셈”이라고 기뻐했다.
이 부장은 “일반전형과 특례전형 두 차례 기회를 활용할 수 있다.”면서 “이제 교육여건을 따라 도시학교로 갈 이유가 없다.”고 단언했다.그는 특히 “도시지역 학생들과 경쟁하는 게 아니라 농·어촌 학생들과 경쟁하기 때문에 좋은 대학에 갈 수 있게 됐다.”면서 “명문 목포고·여수고·순천고가 올해부터 평준화로 바뀜에 따라 이 지역 우수학생들도 상당수 지원하지 않겠느냐.”고 기대를 표시했다.
장성고는 지난해 전체 대학 합격자의 68%가 특례입학자다.특례입학으로 서울대에 4명,연세대에 6명,고려대에 4명이 들어갔다.
이 부장은 “현재 대부분 농·어촌 학교가 수능성적이 따라주지 않아 상위권 대학에 진학을 하지 못하는 실정”이라면서 “내신 등급제는 이런 문제를 상당부분 해소시켜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포항 김상화·장성 남기창·서울 채수범·이효용기자 shkim@seoul.co.kr
2004-08-28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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