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을 위한 동화] 말과 말

[어른을 위한 동화] 말과 말

입력 2004-05-28 00:00
수정 2004-05-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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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넌 모를 걸?

말(馬)이,히이잉하는 울음소리를 내고,따그락 따그락 발굽소리를 내며 바람처럼 달리는 말(馬)이,한때는 멋진 날개와 꽤 괜찮은 쓸개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새도 아니고,곤충도 아니고,용도 아니고 선녀도 아닌 것 중에서 날개를 가진 것,그래서 공중을 날 수 있는 것은 말(馬),오로지 그 동물뿐이었던 아스라한 시절에는 말(馬)도 우리처럼 말(言)을 했단다.

뽀얀 새벽 안개를 헤치며 말(馬) 한 마리가 바삐 날고 있었어.

정신없이 날아간 말(馬)은,아직 잠이 덜 깬 채 이제 겨우 눈을 끔벅이고 있는 여우에게 숨가쁘게 속살거렸어.

“아,글쎄 지난 밤에,고슴도치 부부가 싸움을 했는데….”

‘싸움이라고? 고슴도치 부부가?’

여우는 입을 쫙 벌리고 하품을 한번 늘어지게 한 다음,느릿느릿 물었어.

“그래서? 그게 어쨌다는 거야,아침부터? 곰이 달밤에 재주를 피우든 말든,고슴도치들이 어쩌든 나랑 무슨 상관이라고?”

“아,아니 뭐 그냥 그렇다는 거지.별일은 아니고….”

조금도 흥미를 나타내지 않는 여우를 보자,어색해진 말(馬)이 말(言)꼬리를 흐리며 멈칫멈칫 날아올랐지.

“원,별 싱거운 꼴을 다 보겠네!”

멀어져가는 말(馬)을 바라보면서 여우는 픽 웃었어.그러고는 곧 잊어버렸지.

얼마 후에,먹이를 찾기 위해 어슬렁거리던 여우는 우물우물 되새김질을 하며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는 말(馬)과 우연히 마주쳤지.

‘뭘 저렇게 입안에 가득 넣고 돌아다닌담?’

여우는 혼자 중얼거렸어.

그런데 여우가 사냥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보니,말(馬)이 아직도 뭔가를 우물거리고 있는 거야.

“밥 먹을 시간도 없다니까!”

갑자기 머쓱해진 것일까? 여우와 눈이 마주치자 말(馬)이 변명하듯 씨익 웃었지.여우는 또 픽,웃음이 났어.

“도대체 왜 밥 먹을 시간이 없는데?”

“으응… 바빠서.그래서 그렇지 뭐.”

“바빠서?”

여우가 되물었어.

“그래서 식사하실 짬도 없으시다?”

“으응… 그,그런 셈이지 뭐.”

말(馬)은 말(言)을 더듬었지.

“뭘 하시는데? 대체 하루 종일 뭘 하시는데,식사하실 시간도 없이?”

말(馬)은 아무 말도 못하고 우물쭈물 자리를 피해 버렸어.

“정신없는 친구.밥 먹을 시간도 없이 싸다니면서 대체 무슨 대단한 일을 한다는 거야?”

여우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지.

또 얼마가 지났어.여우는 굴 앞에 엎드려 한가롭게 햇볕을 쬐고 있었지.그때 갑자기 땅이 쿵쿵 울리는 거야.무슨 일인가 알아보려고 막 일어서던 여우가 미처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굵다란 팔 하나가 여우의 앞섶을 잡고 흔들어댔지.

“이 나쁜 놈! 너지? 네가 그랬지?”

화가 잔뜩 난 곰의 목소리가 우렁우렁 온 산에 울렸어.

“캑,캑,아,아니,왜 이래?”

곰이 목을 너무 꽉 조였기 때문에 여우는 숨을 쉴 수가 없었어.하지만 곰은 아랑곳하지 않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

“내가 정신 나간 것처럼 달밤에 혼자서 체조를 한다고 했다면서? 네가 그런 말(言)을 퍼트렸다며?”

여우로서는 영문을 알 수 없는 일이었어.가까스로 곰을 달래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말(馬)이 그런 말(言)을 했다는 거야.

“그래서 숲속 친구들이 나만 보면 킥킥거린다니까!”

이번에는 여우가 화낼 차례였지.여우는 단숨에 말(馬)에게 쫓아가서 소리질렀어.

“쓸개 빠진 녀석 같으니라고! 보자보자하니까 나중엔 원 별꼴을 다 보겠네! 날개 달고 바삐 날아다니면서,밥도 제대로 못 먹어가면서,기껏 한다는 짓이 말(言)이나 옮기고,싸움이나 붙이는 거냐? 더구나 없는 말(言)까지 지어내고 키워가며?”

그러데 알고 보니 이렇게 말(馬)에게 당한 친구들이 하나둘이 아닌 거야.다람쥐,호랑이,오소리….

이 동물들이 모두 소리쳤지.

“말(馬)이 말(言)에 살을 붙여 부풀리는 통에 못살겠어요!”

이 정도 되면 너도 알지? 이쯤에서 누가 등장한다는 것을.그래,맞아.짐작대로 우리의 해결사 하느님이 나타나는 거야.그래서 예상대로 이렇게 호통을 치시지.

“변변치 못한 녀석! 하는 짓이 줏대가 없고,사리에 온당치 못하니,말(言) 그대로 쓸개가 빠진 녀석이구먼! 네 녀석에게 쓸개가,더구나 날개가 가당키나 하겠느냐?”

예나 지금이나 그분의 말씀은 곧바로 실행되곤 한단다.이번 사건의 경우도 예외일 수는 없었지.그래서 말(馬)은 말(言)을 잘못 일군 죄로 날개와 쓸개를 잃었어.영원히.그리고 아주 모욕적인 이런 욕이 생겨난 거란다.

‘쓸개 빠진 녀석 같으니라고!’

글 이윤희 그림 길종만

작가의 말 말은 정말 쓸개가 없답니다.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자기 일이나 잘 합시다,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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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28 3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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