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왕십리 곱창거리

서울 왕십리 곱창거리

입력 2004-02-13 00:00
수정 2004-0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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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창 좋아하는 당신,곧 뉴타운이 들어서면 다시는 소문난 진짜 ‘왕십리 곱창’ 맛을 못볼지도 모른다.

서울 성동구 왕심리 1동 곱창거리. 해가 지면 처마밑 장식등이 켜지고 곱창굽는 구수한 냄새가 거리를 뒤덮어 애주가라면 들르지 않고는 못배긴다.
 남상인 기자sanginn@
서울 성동구 왕심리 1동 곱창거리. 해가 지면 처마밑 장식등이 켜지고 곱창굽는 구수한 냄새가 거리를 뒤덮어 애주가라면 들르지 않고는 못배긴다.
남상인 기자sanginn@


서울 성동구 왕십리1동 ‘곱창거리’.좁은 골목 곳곳에 뉴타운 조성 계획을 환영하는 플래카드가 나붙어 상반기 안에는 큰 변화가 시작될 곳이다.곱창전문 음식점들이 구릉길 양쪽으로 200m 가까이 늘어서 근방을 지나면 금방 군침이 돈다.구이·볶음은 물론 얼큰한 전골은 애주가들이 소주나 막걸리를 한잔 기울이기에 더 없는 ‘유혹거리’다.오후 5시쯤 문을 열어 다음날 오전 5∼6시까지 영업한다.

‘뭉치면 산다.’실증한 20년 역사

도심부로 첫 발을 뗄 무렵인 1980년대 초반,곱창집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해 지금은 20여곳이나 된다.국가경제 발전과 더불어 시민들의 주머니가 넉넉해진 데다 여가시간이 늘면서 이곳에 야식 열풍이 불어닥친 것이다.요즘 젊은이들은 ‘에이,그런 게 뭐 최고였겠어?’하고 고개를 갸웃할 수도 있겠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충분히 이해되는 얘기다.

80년대 당시만 해도 정부의 산업단지 조성 말고는,일반인 사이에 집적(集積)이 가져다 주는 ‘윈윈(Win-win)’의 값어치에 대한 인식이 없을 때였다.곱창집이 모여든 것은 당시 마장동 도축장과의 인연 덕분이다.

98년 도축장이 폐쇄된 이후에도 산지(産地)와의 ‘연줄’이 이어져 신선도를 유지하고 있다.좀 과장하면 ‘(소·돼지 잡은 뒤 곧장 빼낸 곱창이라)김이 모락모락 난다.’고 말할 정도다.마장동 축산시장에는 지금도 크고 작은 업소가 2000여곳 된다.

손맛에다 푸짐한 인정이 빚어낸 별미

곱창
곱창


“그렇게 손이 커서 어떻게 장사하세요? 하긴 아줌마 마음씨를 못잊어 이렇게 멀리서 일부러 찾아왔지만….”

마포구 도화동에 사는 주부 이미례(42)씨는 말우물길 쪽 P곱창집에 들어서자마자 주인에게 이렇게 말을 건넸다.지난주 친구·가족들과 이곳에 왔는데,집에 싸가지고 갈 곱창을 주문하자 양념이 넉넉하고 어머니처럼 꼼꼼히 챙겨줘 다시 찾게 됐단다.

가게들은 세련되진 않았으나 서민들이 격식에 신경쓰지 않고 마음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대화의 마당 구실도 한다.보통 시민들이 그렇듯 업주들에게 곱창가게는 자녀들 교육을 시키는 등 남부끄럽지 않은 삶의 터전이다.

건너편 B곱창가게 주인 김모(48)씨는 “곧 대학을 졸업하는 맏이에게도 인생을 걸 일거리가 생기지 않는 이상 가게를 물려받도록 권유할 정도로 부끄럽지 않다.”고 말했다.그는 또 “밤낮이 뒤바뀐 생활 속에서도 하루 12시간 이상 일하지만 음식장사 덕분에 먹고 사는 걱정이 없어 좋은 것 같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소곱창·구이곱창·야채곱창·양곱창으로 나눠진 메뉴에는 공통점이 없다고 얘기한다.저마다 소중하게 간직해온 노하우가 다르기 때문이다. 양파·대파,감자에 팽이버섯까지 곁들여지는 소곱창 요리는 맑은 국물이 어울리는 독특한 양념으로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노릇노릇 구워진 곱창에 고추장 양념을 버무린 구이곱창은 새콤달콤한 맛과 고소한 맛을 한꺼번에 낸다.다양한 야채와 독특한 양념이 어우러진 야채곱창은 여성과 아이들에게 인기다.석쇠에 3차례나 구워내 특유의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다.1인분에 7000∼1만 2000원.

일본인 손님도 “한국 곱창 넘버원”

일본인으로 국내에 들어와 우리 가요를 불러 한때 언더그라운드에서 인기를 모은 록 그룹도 이곳과의 인연 때문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졌다.최근엔 잠시 멤버끼리 흩어져 간간이 지하철 역사 등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4인조 그룹 ‘곱창전골’이 그 주인공.

이들은 95년 한국만이 갖고 있는 음식을 맛보자며 황학동에 갔다가 인근 왕십리 곱창전골 맛에 취했다.한국의 록 그룹 ‘산울림’과 신중현에 반해 한국에서 활동하기로 뜻을 모으고 곱창전골이라는 별난 이름까지 붙였다.

이들 외에도 일본인 단골은 심심찮게 찾아온다.이 때문에 성업 중인 곱창집 가운데는 우리나라 청사초롱처럼 생긴 일본식 등불에다 일본어 광고문을 내건 곳도 더러 눈에 띈다.

송한수기자 onekor@˝
2004-02-13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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