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신판 연좌제

[씨줄날줄] 신판 연좌제

강석진 기자 기자
입력 2003-12-16 00:00
수정 2003-1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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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살이라는 단어를 아시나요.사전을 찾아보면 살인자를 사형에 처하는 것을 대살(代殺)이라고 한다.사전에는 없지만 또 다른 뜻으로도 사용되기도 한다.제주도 4·3사건이나 6·25때 가족 가운데 누군가가 검거대상인데 몸을 피했다면 가족 가운데 한 명을 대신 죽이곤 했고 이를 대살이라고 했다.연좌제의 가장 지악한 형태인 것이다.누군가를 대신해 목숨을 바친 그들은 풍상과 함께 산하의 보드라운 흙이 되었지만,현대사 굽이굽이에 뿌려진 그들의 핏자국은 아직 선명하다.

6·25이후 대살은 거의 없어졌지만 연좌제는 살아남았다.경찰청 인터넷 사이트에 1980년 8월1일 연좌제 폐지라고 소개돼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연좌제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그 이후에도 연좌제 관행으로 인한 폐해를 호소하는 주장이 그친 건 아니다. 연좌제는 취업과 출국시 넘기 어려운 장벽이었다.작가 이문열씨는 어느 자리에선가 “나는 아버지가 월북할 때 겨우 세 살이었고,얼굴도 기억 못하고 아버지에게 감화를 받을 처지가 아니었다.…. 길이 다 막혔다.공무원도 못 되고 해외도 못 나가고….할 일이 제한되어 버리는 결과가…”라고 말했다.연좌제의 폐해를 그린 한강의 작가 조정래씨도 “당대를 넘어 다음 세대의 인권까지 제약을 가하는 나라가 문명국가 중에 과연 있을까.”라고 개탄한다.

연좌제는 국가가 국민을 의심하는 제도다.국가나 이념을 위해 인간으로서의 가능성을 질식시키고 입을 틀어막는 제도다.지난 대선 때 노무현 후보도 장인의 좌익 경력과 관련지어 얽혀 들어갈 뻔했었다.연좌제의 망령이 가시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에겐 경계의 대상이 또 하나 생겼다.열린우리당 김희선 의원은 14일 “민주당 조순형 대표의 아버지 조병옥 박사가 친일파”라면서 “조 대표는 입을 열면 안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나중에 김 의원은 광복 후 친일파 형사들을 등용했던 것을 지적한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조 박사의 광복 전후 행적에 대해선 비판이 열려있다.그렇더라도 ‘애비가 빨갱이면 자식도 입닫고 살라’는 연좌제는 안되고 ‘애비가 친일파면 자식도 입닫고 살라.’는 연좌제는 받아들일 수 있는 논리일까.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좌우는 바뀌었지만 논리 구조는 합동이다.진보와 보수,혁명과 반혁명 어떤 이름으로라도 연좌제는 연좌제.인간성에 대한 비열한 공격일 뿐이다.

강석진 논설위원

2003-12-16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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