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바르드나제 어떤 인물/ ‘개혁 전도사’서 ‘부패 대통령’ 전락

셰바르드나제 어떤 인물/ ‘개혁 전도사’서 ‘부패 대통령’ 전락

입력 2003-11-24 00:00
수정 2003-1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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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만 해도 에두아르드 셰바르드나제(사진·75) 그루지야 대통령은 ‘소련개혁의 전도사’로 무수한 칭송과 존경을 받았다.그랬던 그는 지금 부정부패와 경제난을 심화시켜 그루지야를 다시 위기에 빠뜨린 무능한 대통령이란 비난을 들으며 불명예 퇴진의 기로에 서있게 됐다.

18세 때인 1946년 공산당에 입당한 뒤 국가보안위원회(KGB) 의장을 거쳐 72년 그루지야 공산당 제1서기장에 올랐다.그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기장에 의해 옛 소련 외무장관으로 발탁되면서부터 주목받기 시작했다.고르바초프와 함께 개혁정책 ‘페레스트로이카’를 공동 입안,옛 소련의 변화를 이끌어내 서방세계의 감탄을 자아냈다.

그가 소련 보수파 쿠데타 실패 뒤인 90년 조국 그루지야로 돌아왔을 때 국민들은 내전과 무질서의 수렁에서 국가를 건질 구세주로 여겼다.92년 앗자리야 등의 분리 독립 요구를 슬기롭게 해결,그루지야를 내전의 위기에서 구해내 기대를 한껏 높였다.95년 국민의 기대와 존경을 한몸에 받고 그는 대통령에 취임했다.취임 초반 그는 국가 및 경제체제변화에 착수했으며 그의 개혁적 이미지에 반한 미국과 유럽연합(EU)으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는 수완도 발휘했다.그러나 오랜 내전으로 인한 가난과 부패,범죄에 찌든 조국을 하루 아침에 바꾸는 일은 쉽지 않았다.그의 개혁성과 청렴성은 날로 퇴색해갔다.조카와 사위가 대기업을 장악하고 일부 특권층이 국가 이권을 독차지 하는 등 그의 집권 아래 부정부패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구 소련 시절 ‘과일 바구니’로 불릴 정도로 경제적 잠재력을 인정받던 그루지야는 낙후돼 갔으며,국민들의 빈곤도 극심해졌다.

2000년 이번과 비슷한 선거부정 의혹을 받으면서도 재선에 성공했지만 민심은 급속히 그를 떠났다.그는 민심을 되돌리기는커녕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을 탄압하는 등 국민들의 고통과 불만을 철저히 외면해 실각 위기를 스스로 자초한 셈이 됐다.역사의 새 장을 열었다고 평가받던 그가 아이러니하게도 구 시대 역사에 치욕적인 이름을 남길 가능성이 높아졌다.

박상숙기자 alex@

2003-11-24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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