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기대 못 미친 ‘국민연금 개편’

[열린세상] 기대 못 미친 ‘국민연금 개편’

김우찬 기자 기자
입력 2003-10-23 00:00
수정 2003-10-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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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그동안 정부 내에서 결론이 나지 않던 국민연금의 기금운용체계에 관한 논의가 일단락되었다.총리실로의 이관이 예상되었던 기금운용위원회는 그대로 보건복지부 소속으로 남게 되었고,총리실 산하에는 새롭게 연금정책협의회(가칭)가 만들어져서 관련부처 장관들에게 국민연금을 포함한 4대 공적연금의 제도보완과 기금운용에 관해서 기본정책방향을 협의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되었다.이와 관련하여 필자는 몇 가지 우려되는 점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기업연금의 운용체계를 수립할 때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은 해당기업의 최고경영자 또는 지배주주가 연금을 사적이익에 이용하지 않도록 차단장치를 만드는 것이다.마찬가지로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연금의 운용체계를 수립할 때에는 무엇보다도 정권 또는 관료집단이 연금을 정치적 목적(경기부양,공적자금 회수 등)에 이용하지 않도록 차단장치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이런 잣대에 비추어 볼 때 이번 개편방안은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먼저,위원 9명 중 5명이 정무직이고 총리가 의장인 연금정책협의회가 국민연금의 기금운용에 관해서 정책협의권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기금운용에 관한 기본정책(investment policy)은 정권 또는 관료집단으로부터 독립적인 기관에서 최종적으로 수립해야 한다.그런데 현 개편 방안은 정권과 관료집단을 대변하는 연금정책협의회가 정책협의권을 통해서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가 수립한 중장기투자정책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연금정책협의회 당연직 위원에는 심지어 정치상황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청와대 정책실장까지 포함되어 있다.

둘째,대통령이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을 임명함에 앞서 연금정책협의회가 최종심의권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비록 가입자단체에서 위원장 후보를 추천할 수는 있지만 이를 최종적으로 심의하고 대통령에게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절대다수의 위원이 정무직인 연금정책협의회이다.이런 상황에서 과연 정권 또는 관료집단으로부터 독립적인 위원장이 선임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러한 선임절차가 어느 정도 부적절한지는 민간기업이 등기임원을 선임하는 절차와 비교할 때 쉽게 이해가 된다.우리나라에 있어서 대형 상장 또는 등록법인은 등기임원을 선임할 때 최소 50%가 사외이사인 이사회(사내이사 선임의 경우) 또는 사외이사 후보추천위원회(사외이사 선임의 경우)에서 후보를 추천하고,추천된 후보는 주주총회에서 표결에 의해서 선임된다.국민연금가입자총회를 구성해서 표결에 부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가입자 대표가 50% 이상을 차지하는 추천위원회에서 단일 후보를 대통령에게 추천하도록 하는 것이 민간기업 수준의 절반이라도 따라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당초 보건복지부가 제시한 국민연금법개정안에 따르면 위원장을 선임하기 위해서는 추천위원회를 두어야 하고,7명의 추천위원회 위원 중 4명은 가입자단체의 추천을 받은 자로 구성하도록 되어 있어서 상당히 독립적인 추천위원회를 상정하고 있었다.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는 그동안 리더십 부재로 인해서 기금운용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두 가지 정책을 수립하지 못했다.그 하나가 중장기투자정책이고 다른 하나가 주주권 행사방안이다.국민연금은 위험허용한도와 목표수익률에 입각해서 주식 등 위험자산에 어느 정도 투자할 것인지 아직도 공식입장을 정하지 못했고,주식에 투자하는 경우 주주권을 어떻게 행사할 것인지 입장을 밝힌 바 없다.그야말로 원칙 없는 투자를 하고 있다고 비판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다.사실 국민연금의 기금운용체계 개편논의가 시작된 것도 바로 이러한 정책들이 하루빨리 수립될 수 있도록 운용체계를 바꾸자는 데 있었다.

그런데 연금정책협의회에 부여된 정책협의권과 위원장 최종심의권 때문에 그러한 정책들이 연금가입자들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독립적으로 수립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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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우 찬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2003-10-23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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