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군은 지금까지 11차례의 해외파병 역사를 갖고 있다.전투병의 경우 이번에 파병이 이뤄지면 3번째다.
최초의 해외파병은 베트남전쟁에 의료진 130명과 태권도 교관 10명을 보낸 1964년 이뤄졌다.4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베트남전에 의료진을 보낼 당시 정치권에서는 대체로 원만하게 합의를 했으나,전투부대 파병안이 제기되면서 적잖은 논란이 일었다.당시 여당인 민주공화당은 야당의 반대가 거세자 여당 단독으로 국회를 열고 65년 3월13일 전투병 파병안을 가결시켰다.
결국 73년까지 청룡,맹호,백마부대 등 3개 전투사단 4만 8000∼5만명,연인원 32만여명을 파병했다.이후 국군의 해외파병은 특별한 소요가 생기지 않아 관심권에서 벗어났다.하지만 1991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걸프전’이 발발하면서 다시 논의되기 시작했다.걸프전 당시 유엔 결의에 의한 다국적군이 구성되고 전후 복구사업 참여를 위해 참전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일자 비전투병 파병을 조건으로 파병 동의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이에 따라 1991년 의료지원단154명과 공군수송단 160명(수송기 5대)이 파견됐다.
이후의 파병은 유엔 평화유지활동(PKO) 참여 위주로 유엔 가입 이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일정한 몫을 담당해야 한다는 논리에 따라 국회에서도 별 이의없이 파병안은 합의처리됐다.1993∼2003년의 파병은 ▲소말리아(1993년 공병) ▲서부 사하라(1994년 의료지원) ▲그루지야(1994년 군 옵서버) ▲인도·파키스탄(1994년 군 옵서버) ▲앙골라(1995년 공병부대) ▲동티모르(1999년 보병부대) ▲키프로스(2002년 중장 1명) ▲아프가니스탄(2001년 공병·의료지원단 등) ▲이라크(2003년 공병·의료지원단) 등 모두 9차례다.
이 중 베트남전에 이어 두번째로 전투병이 파병됐던 동티모르의 경우 특전사 중심의 전투병 431명이 임무를 마치고 오는 23일 완전 철수한다.
조승진기자 redtrain@
최초의 해외파병은 베트남전쟁에 의료진 130명과 태권도 교관 10명을 보낸 1964년 이뤄졌다.4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베트남전에 의료진을 보낼 당시 정치권에서는 대체로 원만하게 합의를 했으나,전투부대 파병안이 제기되면서 적잖은 논란이 일었다.당시 여당인 민주공화당은 야당의 반대가 거세자 여당 단독으로 국회를 열고 65년 3월13일 전투병 파병안을 가결시켰다.
결국 73년까지 청룡,맹호,백마부대 등 3개 전투사단 4만 8000∼5만명,연인원 32만여명을 파병했다.이후 국군의 해외파병은 특별한 소요가 생기지 않아 관심권에서 벗어났다.하지만 1991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걸프전’이 발발하면서 다시 논의되기 시작했다.걸프전 당시 유엔 결의에 의한 다국적군이 구성되고 전후 복구사업 참여를 위해 참전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일자 비전투병 파병을 조건으로 파병 동의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이에 따라 1991년 의료지원단154명과 공군수송단 160명(수송기 5대)이 파견됐다.
이후의 파병은 유엔 평화유지활동(PKO) 참여 위주로 유엔 가입 이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일정한 몫을 담당해야 한다는 논리에 따라 국회에서도 별 이의없이 파병안은 합의처리됐다.1993∼2003년의 파병은 ▲소말리아(1993년 공병) ▲서부 사하라(1994년 의료지원) ▲그루지야(1994년 군 옵서버) ▲인도·파키스탄(1994년 군 옵서버) ▲앙골라(1995년 공병부대) ▲동티모르(1999년 보병부대) ▲키프로스(2002년 중장 1명) ▲아프가니스탄(2001년 공병·의료지원단 등) ▲이라크(2003년 공병·의료지원단) 등 모두 9차례다.
이 중 베트남전에 이어 두번째로 전투병이 파병됐던 동티모르의 경우 특전사 중심의 전투병 431명이 임무를 마치고 오는 23일 완전 철수한다.
조승진기자 redtrain@
2003-10-20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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