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작은정치’의 가치 인정한 헌재

기고/‘작은정치’의 가치 인정한 헌재

김완주 기자 기자
입력 2003-09-29 00:00
수정 2003-09-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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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헌법재판소가 내린 총선출마 자치단체장의 공직사퇴시한에 대한 위헌결정은 지극히 공정하고 의미 있는 판결이었다.

헌법재판소는 그동안 선거법으로 정한 지방자치단체장의 180일 전 사퇴시한에 대한 헌법소원에서 이 기간이 지나치게 길어 참정권을 위협한다고 판정했다.헌재(憲裁)의 이번 결정으로 오랫동안 논란이 되어왔던 현역 단체장의 참정권 제한 논란은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헌재의 이번 결정을 한껏 반기는 까닭은 이것이 단체장들에게 주는 선물이어서가 아니라,이 결정이 한국정치의 나아갈 방향을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솔직히 헌재의 이번 판단은 내년에 있을 총선에 출마를 고민하고 있는 단체장들에게 좀더 여유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리라는 것은 틀림없다.더군다나 한껏 요동치고 있는 현재의 정치정세에서 말 못할 고민에 잠겨있는 단체장들에게는 굿뉴스임에 틀림없다.

헌재의 판단을 진취적이라고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한국정치에서 ‘작은 정치’의 가치가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점 때문이다.어디서 어떻게 정치를 시작했든 이 세상의 모든 정치인들에게 ‘현장정치’ 혹은 ‘생활정치’라는 말은 가슴 떨리게 다가오는 개념이다.사람들의 삶 속에 자리 잡은 정치,사람들에게 오랜 친구 같은 느낌의 정치인이 되는 것은 모든 정치하는 사람들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국회를 중심으로 한 중앙정치보다 지방정치가 훨씬 더 매력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단체장들은 늘 사람들 속에서 부대끼며 이른바 민생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

단체장들이 만나고 때로는 소리쳐 싸우고 돌아서선 막걸리 한잔으로 화해를 거듭하는 이 현장은 늘 분주하고 사소하지만 ‘작은 정치’의 터전인 것이다.그리고 이 ‘작은 정치’에서 정치를 깨닫고 훈련받은 단체장들의 경험은 한국정치가 사람을 위하는 정치로 가는 디딤돌이 될 것이다.

단체장들의 정치적 진출은 많은 사람들이 ‘답이 없다’고 한탄하는 서울집중과 지방의 저발전을 해소할 수 있는 첩경이 된다.지방정치를 조금이라도 겪어본 이들은 한국의 중앙집권적 정치구조가 지방을 얼마나 피폐하게 하는지 실감할 것이다.오랜지방의 피폐화는 곧 서울의 부실화를 가져왔다.끝없이 비대해진 서울은 이미 효율성과 경쟁력을 모두 잃고 있다.

시대의 화두처럼 선문답만 거듭하고 있는 지방분권이 좀더 현실적인 차원에서 강력하게 추진되기 위해서는 뜻 있고 유능한 단체장 출신의 국회의원들이 나와야 한다.

좁아터진 이 나라에서 국토가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자원이 고르게 활용되기 위해서는 지방의 잠재력을 완전하게 활용해야 하는 것이다.지방분권은 단지 소외된 지방에 대한 도덕적 배려가 아니라 21세기의 발전전략이다.지방정치가 한국의 주류정치권에 진입해야 하는 이유가 또 여기에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변화는 이제 한국정치도 전문성을 요구한다는 점이다.갈수록 다양하게 분화하는 이익집단간의 갈등과 분쟁을 조정하고 제한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끝까지 경청하고 그 대화 속에서 한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는 것,지방에 앉아서도 세상을 내다보며 세계의 변화를 이해하고 분석하는 것,그것이 바로 정치이며 한 시대를 이끌어 가는 리더십인 것이다.

물론 헌재의 이 판결이 자칫 자치단체장들에게 실리와 정치적 야심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결정으로 오해되거나 활용되는 것은 극히 경계할 일이다.또 지방정치만이 언제나 옳고 모든 단체장들이 시대를 통찰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사회에서 가장 원칙적이고 보수적인 공간인 헌법재판소의 이번 판단은 한국정치가 지금 어디를 향하고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다.지금이야말로 세력의 입장에서 정치를 분석하는 데서 벗어나 정치 자체를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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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주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대표회장·전주시장
2003-09-29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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