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언론의 힘은 사실에 근거한 비판”/예순아홉에 전장 누비는 피터 아넷 기자

“진정한 언론의 힘은 사실에 근거한 비판”/예순아홉에 전장 누비는 피터 아넷 기자

입력 2003-09-17 00:00
수정 2003-09-17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고희를 앞둔 예순아홉의 나이에도 여전히 전장을 누비고 있는 ‘영원한 종군기자’ 피터 아넷이 한국을 찾았다.CNN 기자였던 지난 91년 걸프전 특종보도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고,이라크전에서는 미군작전을 비판한 발언으로 NBC방송에서 해고돼 논란이 됐던 바로 그 인물이다.

한국언론재단 초청으로 방한한 아넷은 16일 국내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언론의 책임과 기자정신을 누누이 강조했다.“언론의 최대 무기는 ‘사실’에 있습니다.의견이 아닌 사실에 근거한 비판정신이 언론의 힘입니다..”대통령이 자신에 대한 언론의 비판적 보도를 소송으로 대응하고 있는 한국 상황에 대해 “미국에서는 대통령이 언론기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사례가 없다.”면서 “공인이라면 여러 평가를 인정하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풍토지만 언론 또한 무책임한 보도를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미국언론 스스로 비판기능 포기

아넷은 최근 2년 동안 정부편향적 태도를 보인 미국 언론에도 호된 비판을 쏟아냈다.“이라크전쟁은 감시와 비판이라는 본연의 임무를 상실한 미국 언론에도 책임이 있습니다.”그는 미 언론의 최근 보도행태가 정부권력에 통제받던 과거로 퇴보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2차대전 당시에는 모든 기자들이 군복을 입어야 했을 정도로 언론에 대한 통제가 엄격했습니다.연합군에 유리한 전황만 보도되던 때였죠.”당시와 다른 점을 꼽자면 이제는 미국 언론 스스로가 비판기능을 포기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이라크전이 발발 전에는 부시 행정부의 강경정책을 비난하던 주류 언론들이 그같은 우려를 자체적으로 걸러냈습니다.”

60년대 베트남전을 계기로 언론의 견제기능을 강화해 정부 정책에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고 워터게이트 사건 등을 통해 세계 언론의 본보기로 자리매김했던 미 언론이 이제 전세계로부터 ‘자국 위주의 편파보도를 일삼는다.’는 비난을 받게 됐다.이같은 상황은 모두 “9·11테러 때문”이라고 그는 분석했다.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이자 언론산업의 상징이었던 세계무역센터가 테러로 무너지는 광경을 직접 목격한 미 언론들은 공포와 분노를 느끼게 됐다고 한다.“이후 아프간전을 시작으로 이라크전까지 미 언론은 부시 행정부의 복수전을 용인하게 됐습니다.”그의 지적에 따르면,미 언론은 이라크전을 정당화하는 데 직접 나섰고 막대한 예산지출과 인권침해 등 여러 문제를 노출시킨 대테러전도 눈감아줬다.그는 “9·11테러 이후 2년간은 언론의 사회감시 기능보다 국가안보가 우선시 되던 시기였다.”고 꼬집었다.

●9·11테러 이후 국수주의적 보도 심화

아넷의 설명은 계속됐다.“언론사간 경쟁도 국수주의적 보도를 부추겼습니다.”폭스TV,워싱턴포스트 등 여론 형성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보수 언론이 애국심을 부추기는 상황에서 정부에 공격적 보도행태는 비애국적 행위로 호도되기 십상이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미 언론의 국수적인 태도가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고 그는 평가했다.“전비가 천문학적으로 불어나고 미군 피해가 증가하면서 이라크전에 대한 보도가 균형을 잡아가고 있습니다.”하지만 미 언론의 자발적인 자성의 결과는 아니라고 지적했다.“이라크전을 바라보는 미 국민들의 시각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전쟁 피해에 대한 대중의 우려가 커지기 시작하자 미 언론들도 현실을 반영하게 된 겁니다.”미국 언론이 균형감각을 회복하게 돼 다행스럽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서방기자로는 처음으로 빈라덴과 인터뷰

현재는 영국 데일리 미러 등에서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41년째 분쟁현장을 취재하고 있는 아넷.“전시상황일지라도 사실을 보도하는 것이 기자의 의무”라고 당당히 밝히는 그에게도 언론인으로서 굴곡이 많았다.

AP통신 베트남 특파원시절인 66년 라오스 쿠데타 발발 보도로 퓰리처상을 수상했고,CNN 기자시절 걸프전을 생중계하며 세계적 스타기자로 떠올랐다.또 지난 97년에는 서방 기자로는 처음으로 알 카에다의 오사마 빈 라덴과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그의 걸프전 보도는 사상 처음으로 TV로 생중계된 전시상황이었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특히 그가 보도한 전쟁참상은 공격의 정확성을 자랑하며 민간피해의 최소화를 선전하려던 당시 부시 정부에 치명타를 입혔다.때문에 백악관은 아넷이 이라크의 허위정보 선전도구에 불과하다며 맹비난을 퍼부었고 34명의 의원들은 CNN에 아넷이 비애국적 기자라는 항의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맹활약을 펼치던 그도 98년 미군이 월남전 당시 사린가스를 사용했다는 특종보도가 결국 오보로 밝혀져 18년 동안 재직했던 CNN에서 해고당했다.또 지난 3월에는 NBC방송의 종군기자로 바그다드에서 활약하다 이라크 국영TV와의 인터뷰에서 미군의 작전이 실패했다고 언급해 전격 해고된 바 있다.

강혜승기자 1fineday@
2003-09-17 17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탈모약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재명 대통령이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탈모는 생존의 문제”라며 보건복지부에 탈모 치료제 건강보험 적용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의 발언을 계기로 탈모를 질병으로 볼 것인지, 미용의 영역으로 볼 것인지를 둘러싼 논쟁이 정치권과 의료계, 온라인 커뮤니티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당신의 생각은?
1. 건강보험 적용이 돼야한다.
2. 건강보험 적용을 해선 안된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