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영광 깊은 좌절’
고 정몽헌 회장은 서른 세살 때인 1982년 현대상선 대표이사에 오르며 경영인으로서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했다.그뒤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반도체)·현대엘리베이터·현대정보기술·현대건설·금강기획·현대상사 등의 대표이사를 거쳐 96년 그룹 부회장에 올랐다.이어 98년 그룹 공동회장 취임과 동시에 금강산관광 등 대북사업을 관장,정주영 전 명예회장의 강력한 후계자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정 회장은 현대그룹 분열의 시발점인 2000년 3월의 이른바 ‘왕자의 난’에서 ‘장자승계’라는 일반적 예상을 깨고 형 몽구(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씨를 제치고 그룹의 법통을 이어 받았다.98년 4월부터 2000년 6월까지의 2년 남짓이 정 회장으로서는 황금기였던 셈이다. 그러나 그는 예상치 못했던 정몽구 회장의 강력한 반발과 계열사에 대한 취약한 지분구조로 인해 현대·기아차그룹의 경영권 확보에 실패하고 만다.영광의 순간은 3개월에 그치고 만 것이다.이로 인해 정 회장은 사실상 경영일선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고,한때 80여개의 계열사를 거느리며 국내 재벌순위 1위로 군림하던 현대그룹은 자동차·중공업그룹 등으로 속속 쪼개져 10대 그룹에서도 밀려났다.2000년 6월 현대아산이사회 회장이 되고 나서의 일이다.
정 회장은 우여곡절 끝에 현대건설·현대아산·현대전자·현대증권 등 금융·전자사업과 대북사업의 경영권을 차지했지만 대북사업 난조로 현대그룹은 급속한 몰락의 길을 걸었다.
박건승기자 ksp@
고 정몽헌 회장은 서른 세살 때인 1982년 현대상선 대표이사에 오르며 경영인으로서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했다.그뒤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반도체)·현대엘리베이터·현대정보기술·현대건설·금강기획·현대상사 등의 대표이사를 거쳐 96년 그룹 부회장에 올랐다.이어 98년 그룹 공동회장 취임과 동시에 금강산관광 등 대북사업을 관장,정주영 전 명예회장의 강력한 후계자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정 회장은 현대그룹 분열의 시발점인 2000년 3월의 이른바 ‘왕자의 난’에서 ‘장자승계’라는 일반적 예상을 깨고 형 몽구(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씨를 제치고 그룹의 법통을 이어 받았다.98년 4월부터 2000년 6월까지의 2년 남짓이 정 회장으로서는 황금기였던 셈이다. 그러나 그는 예상치 못했던 정몽구 회장의 강력한 반발과 계열사에 대한 취약한 지분구조로 인해 현대·기아차그룹의 경영권 확보에 실패하고 만다.영광의 순간은 3개월에 그치고 만 것이다.이로 인해 정 회장은 사실상 경영일선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고,한때 80여개의 계열사를 거느리며 국내 재벌순위 1위로 군림하던 현대그룹은 자동차·중공업그룹 등으로 속속 쪼개져 10대 그룹에서도 밀려났다.2000년 6월 현대아산이사회 회장이 되고 나서의 일이다.
정 회장은 우여곡절 끝에 현대건설·현대아산·현대전자·현대증권 등 금융·전자사업과 대북사업의 경영권을 차지했지만 대북사업 난조로 현대그룹은 급속한 몰락의 길을 걸었다.
박건승기자 ksp@
2003-08-05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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