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코드전쟁’ 끝내자

[열린세상] ‘코드전쟁’ 끝내자

오미영 기자 기자
입력 2003-08-01 00:00
수정 2003-08-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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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을 공부하고 가르치는 입장에서 보자면 노무현 대통령의 언론관은 구체적이고 생생한 토론거리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얼마 전 “보도내용이 진짜 세상 본질인지,실제로 가장 중요한 일인지 궁금하게 생각된다.”는 발언 역시 그렇다.이는 언론관련 학과 교재들에서 비중 있게 다루는 ‘미디어와 현실 인식’,‘의제 설정’,‘뉴스 가치’ 문제를 생각하게 만든다.

흔히 언론매체를 일컫는 미디어(media)는 본래 단수형 미디엄(medium)이 지닌 뜻 그대로 ‘중간’을 의미한다.여기서 중간이란 곧 세상(현실)과 수용자 사이의 중간을 말하는 것이다.“언론보도 내용이 왜 세상 본질 혹은 현실 자체가 될 수 없는가?”에 대한,다소 부족하나마 가장 손쉬운 답을 여기서 도출할 수 있다.미디어의 의사소통 방식이 인간의 그것과 다르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인간은 실생활에서 오감(五感)을 이용해 현실을 인식하지만 미디어를 통하는 순간 그것은 불가능하다.아다시피 신문은 텍스트와 사진,라디오는 소리라는 제한된 요소만으로 커뮤니케이션한다.텔레비전은 약간의 텍스트 외에 소리와 영상을 동원할 수 있고 인터넷 미디어는 이에 한 발 더 나아가 인간 커뮤니케이션과 매우 유사한 상황을 경험하게 만들 수 있지만,어디까지나 현실을 최대한 모사(模寫)하고자 노력하는 존재들일 뿐이다.요컨대 미디어를 통해 나타나는 현실은 재현된(represented) 현실이지만 우리가 그것을 현실 자체라고 인식할 때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전 세계인이 동시에 텔레비전을 통해 직접 목격한 9·11테러 현장을 떠올려 보자.현실임에 틀림없지만,엄밀히 따지자면 그것은 우리 눈이 본 현실이 아니라 카메라(를 들이대는 제작자의) 눈이 보여준 현실이며 따라서 어디까지나 재현된 현실이자 이미지이다.그뿐인가.뉴욕 최고의 자존심이 테러에 의해 무너진 현실은 짧은 순간 단 한번뿐이지만 텔레비전이 보여준 현실은 셀 수 없을 만큼 여러 번이다.테러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보다 텔레비전 시청자들이 더 큰 충격에 휩싸이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미디어마다 각기 다른 특성이 있긴 해도,미디어의 현실재현 문제는 이런 맥락에서 생각하고 파악해볼 수 있다.

물론 앞서 노대통령이 표현한 섭섭함은 보다 본질적인 문제를 겨냥하고 있음을 잘 안다.그에 대한 대답은 파고들수록 복잡한 것이 사실이고 작금의 보도행태 가운데 언론인의 윤리의식 부재를 탓하게 만드는 부분은 분명히 존재하지만,단순화의 오류를 무릅쓰는 용기를 내어 직설화법으로 말한다면 그 또한 코드 문제와 다름없다.세계 어느 나라 언론이건 작동 시스템은 매우 복잡하며 고도로 전문적이라는 특징을 갖는다.집단 고유의 코드 체계가 매우 정밀하며 제작공정 또한 까다롭기 때문이다.이런 의미에서 언론이야말로 ‘원조 코드집단’인 셈인데,서로간 ‘타인의 코드’에 대한 한치 양보 없는 싸움을 벌이고 있는 모양새와 다를 것 없어 보인다.그렇다고 오해는 마시라.두 집단이 코드를 맞춰달라는 얘기를 하는 것은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구경하는 것을 얼마나 좋아했으면 우리말에 ‘싸움구경’,‘불구경’이란 말까지 생겼겠느냐는 얘기가 있지만 참여정부 이래 졸지에 각종 ‘코드전쟁’ 구경꾼이 된 국민의 입장은영 개운치 않다는 점을 꼭 알아주었으면 한다.사사건건 언론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는 모습을 보는 것도 민망하다.마치 사랑을 갈구하는 대상에게 투정을 부리고 떼쓰는 철부지를 보는 것 같아서이다.그렇다면 인터넷신문을 만들어 ‘의제 설정’과 ‘뉴스 가치’를 직접 다뤄보겠다는 발상은 어떤가? 제발 짝사랑에 좌절한 김에 성급하게 결혼을 결정하는 것과 같은 치명적 실수는 범하지 말기를 바랄 뿐이다.그리고 마지막으로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고 정말 그럴 리는 없지만 혹여 구경의 재미(?)를 주기 위한 저의가 어느 한쪽에 조금이라도 있다면,징그럽고 역겨운 일이다.단연코 말하건대 천벌 받을 일이다.

오 미 영 경원대 교수 신문방송학
2003-08-01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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