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포럼] 150억원과 DJ 조사

[대한포럼] 150억원과 DJ 조사

김명서 기자 기자
입력 2003-06-21 00:00
수정 2003-06-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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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잡범으로 만드는군…” 얼마 전 DJ정권에서 요직을 차지했던 인사들이 수뢰혐의 등으로 줄줄이 검찰의 수사선상에 오르자 동교동계 한 인사가 내뱉은 말이다.혐의 사실이 그렇고 그런 범죄자 수준에 불과하다는 뜻이다.구속영장에 적시된 전직 장관이나 장관급의 수뢰액은 수천만원 수준이었다.전·현직 국회의원도 마찬가지.많아야 1억원 남짓이었다.

그 정도 자리에 있었다면 과거 전례로 미루어 수억 내지는 수십억원은 받았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 인사는 말했다.돈 몇푼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도덕불감증이 한심하다는 개탄이었을 것이다.그렇지만 그 말 속에는 검찰,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의 청와대에 대한 원망이 서려있는 듯했다.그 인사는 특히 대북송금 특검 도입에 불만이 컸다.현 정권이 바람막이가 되어주기는커녕 오히려 파국을 부채질하고 있다고 비난했다.전정권과의 차별화를 그 배경으로 꼽았다.

그의 말대로라면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장관의 150억원 수뢰의혹은 그야말로 격에 맞는 사건이다.‘왕수석’‘부통령’ 등으로 불린 박 전장관의 위상을 수뢰 액수에 견주어보면 그렇다는 얘기다.

하지만 의혹의 실체는 아직도 드러나고 있지 않다.특검은 구속영장에 박 전 장관이 2000년 4월초에 이익치 전 현대증권회장에게서 150억원을 1억원짜리 양도성예금증서로 받았다고 적시했다.하지만 박씨는 강력히 부인하면서 ‘배달사고’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문제의 돈을 이씨가 빼돌렸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박 전 장관측은 특검이 사실이 확인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150억원 문제를 꺼낸 데는 몇 가지 노림수가 있다고 여기고 있다.우선 사건의 성격을 비리사건으로 격하시키려는 의도가 있다고 본다.대북송금 문제가 통치행위 범주에 해당되기 때문에 사법조사 대상이 안 된다는 논리를 무력화하기 위해 150억원 문제를 꺼냈다는 주장이다.그렇게 되면 특검시한 연장과 김대중 전 대통령 조사 문제도 특검 뜻대로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김 전 대통령측은 무엇보다 특검수사가 남북정상회담의 의미와 가치를 훼손할 가능성을 우려한다는 소식이다.남북평화는 그의 평생 목표였고 철학적 소신이었기에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그 때문에 건강이 좋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6·15 남북정상회담 3주년 TV특별대담에 나섰다고 한다.김 전 대통령은 보좌진이 작성해준 원고를 물리고 1시간짜리 대담원고를 손수 작성할 만큼 열의를 보였다는 것이다.할 말은 다하기 위해서다.그 때문인지 방송 이후 건강은 한결 좋아졌다고 주변인사는 전했다.

특검은 20일 수사연장승인요청서를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냈다.150억원의 실체를 규명하려면 기간을 연장해야 한다는 것이다.정치권에서는 찬반양론이 팽팽하지만 150억원 건이 불거진 상황에서 특검의 요청은 일견 타당하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수사기법상 가능하다면 대북송금 문제와 150억원 건은 분리해 수사했으면 한다.남북정상회담의 역사성은 온전하게 살렸으면 하는 바람에서다.3년 전 남북 정상이 만났을 때의 감격을 되짚으면 더욱 그렇다.DJ정권 당시 무슨 무슨 게이트다 해서 비리사건이 잇따랐지만 남북문제에서만큼은 비리와 부정이 없기를 많은 사람들이 바랐고 그렇다고 믿어왔다.남북정상회담의 대가성 여부를 캐는 판에 150억원 비리의혹까지 덧씌우는 것은 자칫 스스로 오물을 뒤집어쓰는 격이 될 수도 있다.남과 북,그리고 민족의 자존심을 생각해야 한다.김 전 대통령 조사 문제도 같은 시각에서 접근하면 바람직한 해법이 도출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다만 여론동향 등 정치적 요인을 지나치게 살피다 보면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김 명 서 논설위원 mouth@
2003-06-21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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