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두의 그린에세이] 청남대 골프장

[김영두의 그린에세이] 청남대 골프장

김영두 기자 기자
입력 2003-05-13 00:00
수정 2003-05-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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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껏 답사해본 곳과는 전혀 다른 골프장을 만났다.그 골프장은 호수로 완만하게 흘러 내리는 산자락의 풀밭에 있었다.

제1홀이 시작되는 그늘집에서 12시 방향으로 150m 떨어진 곳과,2·4·8·10시 방향으로 좀 더 멀리 떨어진 곳에,모두 5개의 그린이 있다.그린의 바로 옆은 다음 홀의 티샷 지점이다.2시 방향으로 보이는 그린은 산 중턱 높은 곳에 위치했을 뿐 아니라,그린의 턱 밑에 깊은 벙커가 있어서 공략하는 묘미를 곁들였다.그늘집은 호수 쪽으로도 열려 있어 낚싯대도 담글 수 있다.

만약에,제2홀 티잉그라운드에서 페어웨이로 공을 날렸는데 제1홀의 그린위로 공이 떨어졌다고 하자.그러면 머릿속에서 다시 그림을 그린다.파4인 제2홀을 파3홀로 재설계를 해 파온 시킨 것으로 계산하고,퍼트를 한다.홀 아웃한 다음에는,처음의 티잉그라운드로 되돌아 갈 것인지,드롭을 하고 두 번째 샷을 날릴 것인지,아니면 새로운 티샷을 할 것인지는 골퍼가 결정한다.홀의 레이아웃은 골퍼의 상상 속에서 무한히 자유로울 것이다.

여기는 청남대 골프장이다.

초승달처럼 휘어진 골프코스 가장자리의 산책로를 따라가면 갑자기 길이 끊기고 호수로 가늘게 뻗어있는 곳이 나타난다.대청호와 청남대 본관과 그늘집이 한눈에 들어오는 한평 남짓한 제9홀의 티잉그라운드다.티샷을 150m만 날린다면 공은 물을 건너 페어웨이에 안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훤칠하게 키 큰 나무들이 페어웨이로 나는 공의 길을 차단하고 있다.골프를 안 친 두 대통령 재임시절에 심은 나무들이리라.이 곳에서 누군가 다시 골프 라운드를 하려 한다면,이 잘생긴 나무들은 이사를 가야 한다.

골퍼가 죽어서 하늘나라에 올라갔는데,옥황상제가 말했다.

“천국과 지옥 중에서 택하라.”

“천국에는 골프장이 있겠죠?”

“천국에는 골프장이 없지만 지옥에는 있다.”

골퍼는 골프장이 있는 지옥으로 갔다.지옥에는 그림같은 골프장이 있었는데,골프채도 없고,골프공도 없는,단지 눈으로 볼 수만 있는 골프장이었다.골퍼는 지옥이 왜 지옥인지 깨달았다.

골프를 즐기지 않았기에 골프코스를 버려놓은 대통령, 아무리 생각해봐도 바보같은분이다.

소설가·골프칼럼니스트 youngdoo@youngdoo.com
2003-05-13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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