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안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고려청자 운반선은 한 척인가,두 척인가.문화재청이 전북 군산시 옥도면 비안도(飛雁島) 동쪽 해역에서 22일 제4차 수중발굴조사에 들어갔다.
문화재청 소속 국립해양유물전시관 수중발굴팀이 새달 14일까지 벌이는 이번 조사는 주변지역 일대에 대한 광역탐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한 마디로 유물의 추가인양 보다는 침몰한 운반선을 찾아내는데 주안점을 두겠다는 것이다.
비안도 앞바다에서는 지난해 4월 어부가 신고한 243점을 비롯하여 긴급탐사와 1∼3차 조사를 통해 모두 3019점의 청자를 건져올렸다.
학계와 문화재당국이 선체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은 2∼3차 조사에서 나온 국화문합과 모란문합,사발 등 7점의 상감청자 때문이다.전체 유물에 비하면 미미한 숫자지만 상감청자의 존재로 인하여 침몰선에 실린 청자의 연대는 크게 달라진다.
논란은 상감청자가 발견되기 이전인 지난해 5월 1차 조사에서부터 시작됐다.윤용이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는 당시 “이 청자들이 97∼98년 전북 부안 유천리 가마터에서 발굴된 12∼13세기 유물들과 문양·모양이 일치하는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12세기 후반 것으로 보았다.
반면 김영원 국립제주박물관장은 “기술이 따라주지 않아 전성기에 비하여 다소 어두운 빛깔이 나는 만큼 11세기가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10세기말에서 12세기초에 걸쳐 만들어진 것”이라고 추정했다.문화재위원인 강경숙 충북대 교수는 “앵무새 무늬 등이 나타나는 것으로 볼 때 11세기 후반에서 12세기 전반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2차조사 이후 비록 적은 숫자이기는 하지만 고려청자 편년의 기준이 되는 상감청자가 나온 것.학계에서는 상감청자가 12세기 중엽에 나타났다는 설을 수긍하는 가운데,빨라도 12세기 초반 이전으로 올라가지는 않는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다.
상감청자의 존재만 보면 ‘비안도 청자’는 12세기 후반에 만들어졌다는 설이 무게를 얻고,인양유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연꽃무늬나 모란무늬 청자나,무늬가 없는 순청자들로만 판단하면 11세기설도 일리가 있다.
따라서 운반선의 존재가 중요해졌다.한 배에 상감청자와 순청자가 함께 실려있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해진 것이다.함께 실려있다면 순청자 계통을 상감기에 앞서는 선(先)상감기로 보는 기존 학설의 수정이 불가피하다.반면 함께 실려있지 않다면,비안도 주변에서 침몰한 청자 운반선은 시대를 달리하는 2척,혹은 그 이상일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발굴팀은 “그동안 많은 유물을 인양했지만 집중적인 유물매장처는 아직 찾지 못했다.”면서 “이번 조사에서 청자운반선을 확인하여 고려청자의 발달과정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서동철기자 dcsuh@
문화재청 소속 국립해양유물전시관 수중발굴팀이 새달 14일까지 벌이는 이번 조사는 주변지역 일대에 대한 광역탐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한 마디로 유물의 추가인양 보다는 침몰한 운반선을 찾아내는데 주안점을 두겠다는 것이다.
비안도 앞바다에서는 지난해 4월 어부가 신고한 243점을 비롯하여 긴급탐사와 1∼3차 조사를 통해 모두 3019점의 청자를 건져올렸다.
학계와 문화재당국이 선체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은 2∼3차 조사에서 나온 국화문합과 모란문합,사발 등 7점의 상감청자 때문이다.전체 유물에 비하면 미미한 숫자지만 상감청자의 존재로 인하여 침몰선에 실린 청자의 연대는 크게 달라진다.
논란은 상감청자가 발견되기 이전인 지난해 5월 1차 조사에서부터 시작됐다.윤용이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는 당시 “이 청자들이 97∼98년 전북 부안 유천리 가마터에서 발굴된 12∼13세기 유물들과 문양·모양이 일치하는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12세기 후반 것으로 보았다.
반면 김영원 국립제주박물관장은 “기술이 따라주지 않아 전성기에 비하여 다소 어두운 빛깔이 나는 만큼 11세기가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10세기말에서 12세기초에 걸쳐 만들어진 것”이라고 추정했다.문화재위원인 강경숙 충북대 교수는 “앵무새 무늬 등이 나타나는 것으로 볼 때 11세기 후반에서 12세기 전반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2차조사 이후 비록 적은 숫자이기는 하지만 고려청자 편년의 기준이 되는 상감청자가 나온 것.학계에서는 상감청자가 12세기 중엽에 나타났다는 설을 수긍하는 가운데,빨라도 12세기 초반 이전으로 올라가지는 않는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다.
상감청자의 존재만 보면 ‘비안도 청자’는 12세기 후반에 만들어졌다는 설이 무게를 얻고,인양유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연꽃무늬나 모란무늬 청자나,무늬가 없는 순청자들로만 판단하면 11세기설도 일리가 있다.
따라서 운반선의 존재가 중요해졌다.한 배에 상감청자와 순청자가 함께 실려있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해진 것이다.함께 실려있다면 순청자 계통을 상감기에 앞서는 선(先)상감기로 보는 기존 학설의 수정이 불가피하다.반면 함께 실려있지 않다면,비안도 주변에서 침몰한 청자 운반선은 시대를 달리하는 2척,혹은 그 이상일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발굴팀은 “그동안 많은 유물을 인양했지만 집중적인 유물매장처는 아직 찾지 못했다.”면서 “이번 조사에서 청자운반선을 확인하여 고려청자의 발달과정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서동철기자 dcsuh@
2003-04-24 27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