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판공비 공개 막는 대법원의 몰지각

[기고]판공비 공개 막는 대법원의 몰지각

장유식 기자 기자
입력 2003-03-29 00:00
수정 2003-03-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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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과 14일,대법원은 지방자치단체장의 판공비(업무추진비) 공개를 제한하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판공비를 사용한 간담회,연찬회 등의 행사에 참석한 개인의 인적사항과 판공비에서 격려금이나 선물을 받은 개인의 인적사항은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로서 보호돼야 하므로 판공비의 공개는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특히 이번 판결은 제주도에서 서울에 이르기까지 지난 3년여동안의 소송에서 판공비 정보공개를 인정했던 전국의 하급법원의 원심판결을 일제히 뒤집었다는 점에서 심각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 판결에 대해 세가지 유감이 있다.

첫째,판결의 내용에 대해서다.판공비 정보공개의 목적은 국민의 혈세가 사적인 용도로 사용되는 것을 감시하기 위한 것이다.그런데 판공비는 주로 간담회,연찬회 등에서의 식대,술값,자치단체장의 선물구입비,격려금 등으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행사참석자나 금품수령자의 이름이 공개되지 않으면 공적인 용도로 적정하게 사용되었는지를 판단할 수가 없다.행사참석자나 금품수령자가 공적인 용도로 받은 것이라면 공개된다고 해서 그의 사생활이 침해될 걱정이 없을 것이고,사적인 것이라면 판공비의 부정한 사용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즉,개인의 사생활 보호와는 무관한 것이다.실제로 많은 지방자치단체에서 판공비 관련 정보를 공개했었지만 단 한번도 개인의 사생활 침해가 문제된 적은 없었다.

둘째,정보공개의 기능에 대한 몰이해다.수십년동안 권위주의 정치,행정우위의 시스템에 길들여졌던 우리 국민들에게 참여민주주의 구현은 시민사회를 성숙시키는 긴급한 과제이다.

이때 참여민주주의의 핵심적 코드는 ‘정보공개’다.대법원의 판결은 행정감시와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헌법과 법률이 보장하고 있는 정보공개제도를 무의미하게 만들 우려가 크다.

특히 지방분권시대를 맞이해 행정당국과 주민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광범위하고 투명한 정보공개인 점을 감안할 때 이번 판결은 시대적 요구에 역행하는 것이다.

원심인 서울고등법원 등도 “미공개된다면 정보공개제도의 본지를 현저히 훼손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셋째,대법원의 역할이다.대법원은 최고법원이다.한 나라의 최고사법기관은 법이론이나 법실무보다는 다양한 경험에 기반한 정책결정을 하는 기관이 돼야 한다고 본다.또한 대법원은 사회 제세력의 현실적 분포를 반영할 수 있는 인적 구성이어야만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선거를 통해 구성되는 행정부나 입법부와 달리 법원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기 때문이다.우리 대법원은 이 점에서 지나치게 보수화,관료화돼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기관장의 판공비를 공개하는 것이 공익에 바람직하다.’는 대다수 지방법원,고등법원 판사들의 판단이 정책적 시정을 요하는 것이었을까.대법관들의 법해석과 시대인식이 일반인의 법상식,더 나아가 원심판결을 선고했던 법관들의 그것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대법관들은 사회적 요구를 충분히 반영할 수 있는 분들로 구성되어 있는가.여러가지 의문이 생긴다.

정보공개와 관련해 대법원의 진정한 역할은 ‘국민의 알권리와 예산의 투명성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는것’이 아닌가 다시 생각해 본다.

사족을 하나 덧붙인다.사법권의 독립은 헌법정신이다.정치권력과의 유착된 과거의 경험은 사법부의 독립을 더욱 절실히 요구한다.하지만 사법권 독립이 국민들의 의식과 괴리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법관인사제도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어지고 법조일원회 및 배심제,참심제 등 새로운 사법시스템에 대한 요구가 커지는 것은 사법부가 국민들의 이해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는 방증이 아닐까 한다.대법원을 비롯한 사법부도 국민들의 비판과 논의의 대상이 되길 희망한다.

장유식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명예논설위원
2003-03-29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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