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글라이스틴 전 주한 미국대사가 6일 오후 4시(현지시간) 워싱턴에있는 한 요양원에서 급성 백혈병으로 별세했다.향년 76세.
1978년 7월부터 81년 6월까지 3년 동안 주한 대사를 지낸 고인은 지미 카터 행정부의 주한미군 철수 움직임과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암살 사건,5·18광주민주화 운동 등 우리 현대사의 가장 아픈 단면을 속속들이 지켜보았다.
글라이스틴 전 대사는 한국에서의 경험을 기록한 회고록 ‘깊숙한 개입,제한된 영향력’을 통해 미국이 주한미군 철수,대북정책 변경,헌법체제 옹호등의 카드로 신군부를 견제하려고 했지만 안보상의 우려 때문에 이를 실행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그는 “광주 민주화운동을 강경 진압한 신군부의 잔인한 행동에 미국이 무력했던 것은 사실”이라고 고백했다.
글라이스틴 전 대사는 88년 광주 청문회 때 증인 출석을 요청받기도 했지만 응하지 않았다.
26년 버지니아주에서 태어난 그는 대학에서 동양학을 전공했으며 51년부터국무부에 들어가 외교관의 길을 걸었다.동아태 담당 정보연구 책임자(69∼71년),국무부 동아태 차관보(74∼76년),국가안보회의 선임 책임자(76년) 등을지냈다.
주한대사로 일하는 중에도 그는 주미 일본협회 회장,미 외교관계위원회 부소장 등을 지내기도 했다.
그는 공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미 외교협회(CFR) 산하에 구성된 한반도 태스크포스에 참가해 중립적인 견지에서 한반도 문제에 관한 조언을 해왔다.
87년에는 미 행정부 고위관리들과 함께 내한해 한국 민주화 추진상황을 살펴볼 정도로 한국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과시했다.
그는 또 지난 2월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대사 등과 함께 북한 방문을 추진하려 했으나 한·미정상회담으로 이를 취소하기도 했다.
지난 6월에도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와 CFR가 워싱턴에서 공동주최한 국제 심포지엄에서 한·미 동맹관계가 어떤 일로도 훼방받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면서도 대북관계의 무게중심은 미국보다는 한국에 두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족으로는 미술사학자 메릴린 윙 여사와 4자녀가 있다.영결식은 13일 낮 12시30분 워싱턴 올소울스 메모리얼 교회에서 거행된다.임병선기자 bsnim@
1978년 7월부터 81년 6월까지 3년 동안 주한 대사를 지낸 고인은 지미 카터 행정부의 주한미군 철수 움직임과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암살 사건,5·18광주민주화 운동 등 우리 현대사의 가장 아픈 단면을 속속들이 지켜보았다.
글라이스틴 전 대사는 한국에서의 경험을 기록한 회고록 ‘깊숙한 개입,제한된 영향력’을 통해 미국이 주한미군 철수,대북정책 변경,헌법체제 옹호등의 카드로 신군부를 견제하려고 했지만 안보상의 우려 때문에 이를 실행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그는 “광주 민주화운동을 강경 진압한 신군부의 잔인한 행동에 미국이 무력했던 것은 사실”이라고 고백했다.
글라이스틴 전 대사는 88년 광주 청문회 때 증인 출석을 요청받기도 했지만 응하지 않았다.
26년 버지니아주에서 태어난 그는 대학에서 동양학을 전공했으며 51년부터국무부에 들어가 외교관의 길을 걸었다.동아태 담당 정보연구 책임자(69∼71년),국무부 동아태 차관보(74∼76년),국가안보회의 선임 책임자(76년) 등을지냈다.
주한대사로 일하는 중에도 그는 주미 일본협회 회장,미 외교관계위원회 부소장 등을 지내기도 했다.
그는 공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미 외교협회(CFR) 산하에 구성된 한반도 태스크포스에 참가해 중립적인 견지에서 한반도 문제에 관한 조언을 해왔다.
87년에는 미 행정부 고위관리들과 함께 내한해 한국 민주화 추진상황을 살펴볼 정도로 한국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과시했다.
그는 또 지난 2월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대사 등과 함께 북한 방문을 추진하려 했으나 한·미정상회담으로 이를 취소하기도 했다.
지난 6월에도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와 CFR가 워싱턴에서 공동주최한 국제 심포지엄에서 한·미 동맹관계가 어떤 일로도 훼방받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면서도 대북관계의 무게중심은 미국보다는 한국에 두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족으로는 미술사학자 메릴린 윙 여사와 4자녀가 있다.영결식은 13일 낮 12시30분 워싱턴 올소울스 메모리얼 교회에서 거행된다.임병선기자 bsnim@
2002-12-09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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