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87년 현직 당서기장이던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직접 쓴 저서 ‘페레스트로이카(개혁)’는 당시 소련체제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속속들이 털어놓고 반드시 이를 고치겠다고 다짐한 일종의 고백서이자 참회록이다.
페레스트로이카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통절한 철학적 반성과 성찰을 이 책은 담고 있다.저자 스스로 밝혔듯이 책을 미국에서 출판한 의도도 당시 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딱지 붙인 미국을 향해 자신의 절박함과 진지함을 직접 호소하겠다는 뜻이었다.
이후 고르비의 개혁과정에 가장 큰 힘이 됐던 것은 러시아 국민과 서방의 일관된 신뢰였다.사람들은 그의 개혁 의지를 의심치 않았고 이를 밑천으로 그는 불가능해 보였던 변혁의 대장정을 성공시켰다.
북한의 경제시찰단이 8박9일간의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남쪽 경제 학습’을 마치고 갔다.74세인 박남기(朴南基) 단장의 노익장과 시찰단원들의 진지함이 많은 화제를 뿌렸다.
김정일 위원장도 이들을 보내며 핵문제로 야기된 긴장상태를 빗대 “정세는 정세고 배울 건배워오라.”고 했다고 하니 앞으로 이들이 보여줄 학습효과가 자못 기대된다.지난해 1월에는 김 위원장이 몸소 중국 경제학습에 나서 상하이 일대를 둘러보고 ‘천지개벽을 보는 것 같다.’는 심경을 토로한 적도 있었다.
이후 많은 사람들이 북한이 중국식 개혁을 뒤따르는 게 아니냐는 기대를 가졌다.그러나 지금까지 북한이 보인 행동은 이런 기대와는 거리가 멀어보였다.본 것 따로 행동 따로였던 셈이다.
북한도 나름대로는 적지 않은 개혁조치들을 내놓았다.가격자유화,인센티브제까지 도입됐다.신의주특구 발표가 있었고 개성공단이 진행 중이다.그런데도 북한을 바라보는 외부세계의 눈길은 여전히 싸늘하게 식어 있다.
왜 그럴까.가장 큰 이유는 김정일 위원장의 개혁의지를 못 믿기 때문이다.김 위원장 스스로 자신의 개혁 의지가 얼마나 절박하고 진지한 것인지에 대한 설득 노력을 제대로 한 적도 없었다.
우리 정부의 책임도 크다.DJ정부가 펴온 대북정책의 근간은 우리가 베풀면 북한도 언젠가는 변한다는 것이다.그 바닥에는 민족의 일체감이 최우선 가치로 자리했다.하지만 경협과 지원에만 골몰한 나머지 개혁의 초심에 충실하라는 훈수에는 소홀했다.핵개발을 한다는 데도 우리는 그것은 안 된다고 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핵에 대해 북한은 안보논리를 내세우고 있다.안전보장을 확약하라고 미국에 요구하고 있다.그러지 않으면 핵합의는 지킬 수 없다고 주장한다.하지만 북한이 ‘강한 미국’을 내세워 상하원까지 장악한 부시 행정부와 외부 세계를 상대로 끝까지 이런 ‘벼랑끝 전술’로 맞설 수는 없다.
그보다는 지금부터라도 치열한 ‘개혁의 고백서’를 만드는 편이 훨씬 더 현명하다.시간이 걸리겠지만,그래서 북한 주민들이 지지하고 바깥 세상이 믿게 해야 한다.국민이 따르지 않는 개혁이 성공할 수는 없다.그리고 개혁이 역풍을 맞을 때 이를 지켜주는 것도 국민이다.91년 여름 보수 쿠데타 때 맨몸으로 고르비를 지켜준 것은 바로 모스크바 시민들이었다.
남북의 주민들과 서방세계가 지지하고,개혁의 초심에 천착하는 진정한 개혁가의 모습을 북한 땅에서 보고 싶다.
이기동 국제팀장 yeekd@
페레스트로이카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통절한 철학적 반성과 성찰을 이 책은 담고 있다.저자 스스로 밝혔듯이 책을 미국에서 출판한 의도도 당시 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딱지 붙인 미국을 향해 자신의 절박함과 진지함을 직접 호소하겠다는 뜻이었다.
이후 고르비의 개혁과정에 가장 큰 힘이 됐던 것은 러시아 국민과 서방의 일관된 신뢰였다.사람들은 그의 개혁 의지를 의심치 않았고 이를 밑천으로 그는 불가능해 보였던 변혁의 대장정을 성공시켰다.
북한의 경제시찰단이 8박9일간의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남쪽 경제 학습’을 마치고 갔다.74세인 박남기(朴南基) 단장의 노익장과 시찰단원들의 진지함이 많은 화제를 뿌렸다.
김정일 위원장도 이들을 보내며 핵문제로 야기된 긴장상태를 빗대 “정세는 정세고 배울 건배워오라.”고 했다고 하니 앞으로 이들이 보여줄 학습효과가 자못 기대된다.지난해 1월에는 김 위원장이 몸소 중국 경제학습에 나서 상하이 일대를 둘러보고 ‘천지개벽을 보는 것 같다.’는 심경을 토로한 적도 있었다.
이후 많은 사람들이 북한이 중국식 개혁을 뒤따르는 게 아니냐는 기대를 가졌다.그러나 지금까지 북한이 보인 행동은 이런 기대와는 거리가 멀어보였다.본 것 따로 행동 따로였던 셈이다.
북한도 나름대로는 적지 않은 개혁조치들을 내놓았다.가격자유화,인센티브제까지 도입됐다.신의주특구 발표가 있었고 개성공단이 진행 중이다.그런데도 북한을 바라보는 외부세계의 눈길은 여전히 싸늘하게 식어 있다.
왜 그럴까.가장 큰 이유는 김정일 위원장의 개혁의지를 못 믿기 때문이다.김 위원장 스스로 자신의 개혁 의지가 얼마나 절박하고 진지한 것인지에 대한 설득 노력을 제대로 한 적도 없었다.
우리 정부의 책임도 크다.DJ정부가 펴온 대북정책의 근간은 우리가 베풀면 북한도 언젠가는 변한다는 것이다.그 바닥에는 민족의 일체감이 최우선 가치로 자리했다.하지만 경협과 지원에만 골몰한 나머지 개혁의 초심에 충실하라는 훈수에는 소홀했다.핵개발을 한다는 데도 우리는 그것은 안 된다고 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핵에 대해 북한은 안보논리를 내세우고 있다.안전보장을 확약하라고 미국에 요구하고 있다.그러지 않으면 핵합의는 지킬 수 없다고 주장한다.하지만 북한이 ‘강한 미국’을 내세워 상하원까지 장악한 부시 행정부와 외부 세계를 상대로 끝까지 이런 ‘벼랑끝 전술’로 맞설 수는 없다.
그보다는 지금부터라도 치열한 ‘개혁의 고백서’를 만드는 편이 훨씬 더 현명하다.시간이 걸리겠지만,그래서 북한 주민들이 지지하고 바깥 세상이 믿게 해야 한다.국민이 따르지 않는 개혁이 성공할 수는 없다.그리고 개혁이 역풍을 맞을 때 이를 지켜주는 것도 국민이다.91년 여름 보수 쿠데타 때 맨몸으로 고르비를 지켜준 것은 바로 모스크바 시민들이었다.
남북의 주민들과 서방세계가 지지하고,개혁의 초심에 천착하는 진정한 개혁가의 모습을 북한 땅에서 보고 싶다.
이기동 국제팀장 yeekd@
2002-11-08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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