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폭력과 여성들 - ‘폭력’을 통해 되짚어 본 여성史

책/ 폭력과 여성들 - ‘폭력’을 통해 되짚어 본 여성史

입력 2002-09-27 00:00
수정 2002-09-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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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폭력’.배경이야 어찌됐건 팽팽한 긴장으로 대립할 수밖에 없는 단어들이다.무슨 사연이 있기에 두 단어가 마주 봐야 할까.영문을 모르고도 덮어놓고 단정할 수 있는 명제가 있다.둘 사이에 ‘남성’이 끼어들지 않을 수 없을 거란 확신이다.

‘폭력과 여성들'은 폭력을 주제로 여성사를 되짚은,‘폭력의 사회사’다.여성과 폭력을 말할 때 퍼뜩 결부되는 이미지는 ‘(폭력의)피해자로서의 여성’일 것이다.여성 역사학자·인류학자·철학자들의 글을 두루 엮은 이 책의 매력은 바로 거기서 출발한다.‘(폭력의)가해자로서의 여성’을 동시에 주요 소재로 상정했기 때문이다.역사적 기록에 투영된 여성의 폭력성이 적나라하게 적시되는 대목들은,폭력에 무력하게 노출된 여성상에만 익숙해온 독자들에겐 이채롭기까지 하다.책은 논의의 범주를 까마득한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넓고 다양하게 잡았다.

먼저 폭력의 피해자로서의 여성.이 사례들을 접하는 건 새삼스러울 게 없다.그러나 그리스 신화 속에서 그 징후를 꼬집어내는 책의 기민함은충분히 흥미롭다.예컨대 여성이 당하는 극단적 폭력인 강간이 신화 속에서 어떻게 정당화했는지 보자.아테네의 왕인 테제가 태어난 과정은 이를 단적으로 말해준다.포세이돈은 에트라를 능욕해 테제를 낳았지만,그 폭력은 ‘신성성’앞에서 거리낌없이 정당행위가 됐다.

제1부 ‘도시국가-여성의 폭력으로 무엇을 하는가?’에서는 이와 엇비슷한 사례가 꾸준히 적시된다.기록으로 남은 고대 그리스의 강간 사례들은 묘하게도 (여성이)젊은 처녀에서 부인으로의 신분변화가 이뤄지는 시점에 주로 발생했다.야생의 삶(미혼녀)에서 문화적 삶(기혼녀)으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자연스럽게 정당성을 확보했다는 것.물론 그같은 기록을 남긴 주체는 헤게모니를 쥔 남성들이었다.

프랑스혁명기에도 여성폭력이 왜곡된 형태로 인식되기는 매한가지.혁명기 기록들에는 여성의 혁명관련 행위들이 “‘여자들’이란 특수집단의 ‘집단폭력’”으로 묘사되기 일쑤다.

변함없이 남성이 정치권력을 장악한 현대에도 여성은 ‘체계적 폭력’의 희생물이라고 책은 통박한다.전쟁상황에서 자행되는 강간이 구체적 사례로 나열된다.

10편의 글들은 시간과 공간 모델을 달리할 뿐 엇비슷한 하나의 결론에 동의한다.취약하고 무책임하고 그러면서도 엄청난 힘을 갖는 여자들은 점점 더 강도높은 사회·경제적 감시를 받게 된다는 것.남성의 시각으로 재단한 여성의 폭력성은 궁극적으로 여성들을 권력공간에서 밀어내는 빌미가 된다는 주장이다.

남녀의 역학관계를 폭력이라는 낯선 주제로 접근한 책에서 색다른 결론을 기대할지도 모른다.그러나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다.암묵적으로 제시된,분명한 하나의 핵심어가 있을 뿐이다.양성 평등을 위해 남녀가 ‘대결’이 아닌‘차이’의 의미를 발견하자는 간곡한 건의를 하는 것이다.1만 8000원.

황수정기자 sjh@
2002-09-2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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