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소설 ‘카르마’ 펴낸 박영한 - 암울한 가족사에 담긴 업보와 운명

새 소설 ‘카르마’ 펴낸 박영한 - 암울한 가족사에 담긴 업보와 운명

입력 2002-09-13 00:00
수정 2002-09-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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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아시스’란 영화를 보면서 내심 놀랐다.화면이 이어질수록 너무도 익숙한 세계와 접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그는 말문을 열었다.“그렇지.내가 바로 저런 유형의 인간을 확장시켜 소설로 다룬 적이 있었지 하는 느낌.불구인 인간의 억제된 본능을 다룬 ‘오아시스’의 장면들이 나의 작품 ‘카르마’와 오버랩되면서 시종 남다른 감회를 주었다.”

‘머나먼 쏭바江’‘왕룽일가’‘우묵배미의 사랑’등 인간중심의 사실적 작품을 선보여 온 작가 박영한(55)이 지난 96년 장편 ‘長江’이후 6년만에 새 소설 ‘카르마’(이룸,7800원)를 냈다.

그가 ‘오아시스’를 통해 전율같은 유사성을 읽은 것은,정신과 육신이 멀쩡한 인간은 오로지 보조자의 위치밖에 점유하지 못한 이 작품의 설정이 오아시스와 흡사하기 때문이다.

실패라는 ‘징그런 현실’로부터의 도피를 위해 찾은 강원도 오지의 한 귀틀집에서 그는 팔다리를 잃고 ‘사리돈’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술로 씻으며 사는 불구자,네안데르탈인을 닮은 뒷방의 약간 모자란 사내와 그의반편이 아내를 통해 잊고 살았던 가족사를 복원해 낸다.

관절염으로 축생같은 삶을 살았던 어머니,행려병자로 떠돌다 죽은 영민했던 이복형,당뇨 합병증으로 요절한 둘째 형과 참담한 가난 때문에 아들을 내다 버려야 했던 아버지 등 아픈 기억 속에 남은 가족들을 초혼(招魂)굿처럼 하나하나 불러낸다.작중 화자역을 맡은 작가는 “실제로 3∼4년전 강원도 평창의 산골 오지에서 이들과 겨울 한 철을 같이 나면서 이들의 일상에서 쓰라린 가족들의 환생태(還生態)를 보았다.”고 고백했다.

그래선지 그의 고뇌와 선택은,마치 살아온 생을 깡그리 참회나 하려는 듯 인간적이고 구도적이다.‘그는 몽당 숟가락으로 내 등짝을 쉴 새 없이 쑤셔댔다.대체 여기는 어디인가? 아아,추위는 바로 바깥에서 우리를 물어뜯기 위해 호시탐탐 노리고 있고,K시의 병원으로 가자면 골짜기를 몇 개나 건너야하는데,운반수단을 잃은 나는 이 번거로운 짐짝을 과연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낯선 타인들을 통해 가족이라는 무형의 존재를 보고,또 그들의 삶에 용해돼 버린 작가의 고뇌는 끊임없이 바위를 굴러 올리도록 한 카프카의 번민을 연상시킨다.

여기에 ‘어머니-나-딸’로 이어지는 업보의 연장에서 보듯 불교적 사유와 상상력이 뒷배경을 이뤄,얼핏 리얼리즘풍으로 읽히면서도 환상적 요소를 차용,이런 유형의 주제가 갖기 십상인 ‘논리적 결함’의 한계를 극복해 냈다.소설 제목 ‘카르마’는 불교의 ‘업보’를 이르는 범어(梵語).

작가는 작품을 통해 그가 체험해 온 가족사의 편린,이를테면 ‘만남’과 ‘헤어짐’,‘불화’와 ‘화해’등을 치장없이 담아 세상을 사는 모든 이들에게 참회를 채근하고,운명을 받아들이라고 담담하게 조언한다.

이 소설의 또다른 착안점은 소설가 박영한의 변신.그는 ‘카르마’를 통해 이전의 작품에서 보여줬던 역사와 현실,사회의식이라는 비교적 둔중한 주제의 ‘짐’을 벗는 대신 어찌 보면 사소하달 수 있는 일상적인 주제를 통해 삶 혹은 인간에게 부여된 보다 근원적인 질문에 다가선다.그래선지 “화단의 잡초 한포기도 예전처럼 생각없이 뽑아버리지 못하겠더라.”는 그다.

그는 “서구적발상법이나 사유체계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삶의 문제에 대한 답을 동양적 사유체계를 통해 구하려고 했다.”면서 “우리가 유용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매번 밀쳐냈던 ‘더 심원하고 유장한 세계를 향한 그리움’이 이 작품을 있게 한 배경이 됐다.”고 설명했다.그는 “내년쯤 인터넷을 주제로 한 작품을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며 작품 구상의 일단을 소개하기도했다.

심재억기자
2002-09-1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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