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오랜만에,아주 오랜만에 대학로를 찾아 연극을 봤다.테네시 월리엄스의 희곡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마지막 공연이었다.블랭취라는 미 남부 귀족 여인의 처절한 고독과 허무,그리고 끝없는 몰락의 과정을 마을을 지나는 전차의 굉음과 함께 그린 작품이었다.블랭취가 불행의 나락으로 한걸음 한걸음 다가설 때마다 전차의 굉음은 늘 따라다녔다.그 전차의 이름이 바로 ‘욕망’이었다.전차는 블랭취가 파멸하게 된 원인이 본인의 의지와는 관계없는 타인의 욕심 때문에 빚어졌다는 것을 암시하는 도구였다.
사실 우리는 자의든,타의든 늘상 부딪히며 살아간다.그 속에서 진실이 왜곡되고,근거도 없는 뜬소문으로 피해를 보기도 한다.남보다 앞서고,우뚝 서기 위해 쉼없이 달리는 욕망의 전차에 몸을 싣고있는 탓이리라.
그러나 세상에는 전차의 굉음만이 존재하는 게 아니다.연극에서도 블랭취가 성당의 종소리를 들으며 집을 나서는 것으로 끝난다.마치 우리더러 하루쯤 풍진을 훌훌 떨어버리라는 듯이.
양승현 논설위원
사실 우리는 자의든,타의든 늘상 부딪히며 살아간다.그 속에서 진실이 왜곡되고,근거도 없는 뜬소문으로 피해를 보기도 한다.남보다 앞서고,우뚝 서기 위해 쉼없이 달리는 욕망의 전차에 몸을 싣고있는 탓이리라.
그러나 세상에는 전차의 굉음만이 존재하는 게 아니다.연극에서도 블랭취가 성당의 종소리를 들으며 집을 나서는 것으로 끝난다.마치 우리더러 하루쯤 풍진을 훌훌 떨어버리라는 듯이.
양승현 논설위원
2002-07-23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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