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눈의 월드컵대표팀 감독과 토속내음 물씬한 통일 운동꾼.누가 뭐래도 부조화이고 어색한 조합이다.그런데 무엇이 이들을 끈끈하게 엮었을까.히딩크 감독이 고국 네덜란드로 돌아가면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에게 존경의 뜻을 담은 편지를 남겼다는 보도를 보며 던지는 물음이다.단 두차례의 만남이었다.지난 4월 월드컵 축구대표팀 정신교육 강연 때가 첫번째였고,며칠 전 히딩크감독의 출국 때가 두번째였다.

스쳐지나는 인연과 같은 만남이었다.하지만 특유의 ‘깡’,투혼,자신만의 컬러를 드러내는 프로정신.삶의 무대는 달랐지만 이런 것들이 두 사람을 당긴 자력(磁力)이었다.히딩크에게 백 소장의 첫 인상은 약간은 충격적이었던 모양이다.백발에 흰두루마기 차림의 강렬한 외모,역동적인 강연,부드러우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신념.그리고 선수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투시력까지.지금까지 접하지 못했던 동양정신의 마력을 확인했을 법하다.히딩크는 강연이 끝난 뒤 사람들에게 무슨 내용이었는지 물었다.그리곤 “깡(orthodox) 있는 그의 모습에 카리스마가 느껴지고 뭔가 통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평했다.

히딩크는 틈만 나면 선수들에게 유럽과 남미축구에 주눅들지 않는 기초체력과 강인한 정신을 강조했다.백 소장은 우리 역사의 해설과 더불어 축구선수 특유의 투지와 기백을 당부했다.아울러 “선수로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춤꾼의 마음가짐을 가지라.”고 주문했다고 한다.주눅들지 않는 당당함,생각하는 축구의 강조였다.

한 순간의 느낌이 삶을 정지시키는 듯한 충격을 줄 때가 없지 않다.적어도 히딩크 감독에게 백 소장의 조우는 그랬다.그는 편지에서 “뚜렷한 소신으로 살아온 백 소장과 나의 축구에 대한 신념이 비슷한 것 같아 특별한 애정을 느낀다.”고 했다.현상에 대한 설명이었지만 감동의 고백이다.때론 격려보단 질책을 감내하며 필드에 나서는 승부사의 숙명이 평생 외곬 삶을 살아온 백 소장의 이미지와 중첩됐을지도 모를 일이다.백 소장은 히딩크와의 공항 이별에서 “사람은 만났다 헤어지지만 뜻과 뜻은 남는다.”고 했다.히딩크는백 소장의 건강을 기원했다.이들이 다시 만날기회가 올지,더 이상의 만남은 없을지 모를 일이다.하지만 마음과 마음의 연결은 영원할 듯싶다.동서와 세대를 넘나든 우정이 아름답다.

최태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