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길위에서 듣는 그리스 로마 신화

책/ 길위에서 듣는 그리스 로마 신화

입력 2002-05-17 00:00
수정 2002-05-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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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연구가이자 소설가 이윤기가 새로운 신화읽기를 내놓아 눈길을 끈다.‘길위에서 듣는 그리스 로마 신화’.

신화 번역,혹은 주제별 신화 연구 등 다양한 신화 해석에 골몰해 온 그가 번뜩이는 창의적 눈길을 돌린 곳은 ‘신화 거꾸로 읽기’, 혹은 ‘역류의 신화학’이다.그는 자신의 작업을 “문화 현상에서 신화의 흔적을 찾아내고 그 흔적을 거슬러 올라가 신들과 만나는 공부”라고 설명한다.

이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문양이나 장식에서 신화의세계로 거슬러 가는 것이다.일상에 묻어 있는 신화를 들려주는 길잡이는 물론 ‘신화 박사’인 저자다.

예를 들어 보자.크리스마스와 연말 선물을 사려는 고객들의 눈길을 끌려고 신세계 백화점이 건물 정문 위에 꽃다발 모양의 장식을 내걸었다.여느 사람 같으면 그냥 지나칠법한데 지은이에겐 예사로운 풍경이 아니다.비슷한 장식이 달린 이탈리아 국립 현대미술관 정면,프랑스 파리의 팡테옹(萬神殿)벽의 장식을 오버랩시킨다.

공통적인 장식을 나열하는 데 그친다면 싱겁다.저자의 해박함은 이 장식들이 꽃이 아니라 ‘풍요의 뿔’(코르누코피아)임을 밝히고 그와 관련된 이야기 보따리를 하나씩 풀면서 독자를 신화의 세계로 안내한다.

그의 해석을 따라 가다보면 어느덧 저승을 지키는 신 하데스,헤라클레스 등 신화속 주인공들을 만날 수 있다.그연관성을 보여주는 길목에는 파리 과일 가게의 원뿔 모양바구니,콩코드 광장의 나일강의 신,헤라클레스상 등 일상에서 접하는 다양한 장식들도 등장한다.

이밖에도 신화에 바탕한 저자의 미덕은 책의 곳곳에 묻어 있다.우리나라 군의관 군복에서 오른쪽 칼라 휘장의 뱀문양에 주목한 다음 ‘뱀과 치료’의 연관성을 풀어나간다.혹은 금강역사가 오른손엔 제우스의 벼락,왼손엔 헤라클레스의 사자가죽을 쓰고 있는 돋을새김에서 간다라 미술의 퓨전성을 읽는다.

물론 이 모든 상상력 여행의 징검다리는 신화다.

지은이의 이런 기발한 상상력은 박물관,의회건물,화장실표지판 등 시공을 초월하여 다양한 장소에서 빛난다.이는그리스·로마신화를 열심히 읽기만 한다고 얻을 수 있는경지는 아니다.

얼기설기 엮인 신화를 특유의 잣대로 재구성하고 평생 발품 팔며 모아온 자료를 덧댄 다음 이를 구수한 입심으로풀어낼 줄 아는 이윤기만이 해낼 수 있는 작업이다.

신화라는 상상력의 젖줄로 다양한 문화적 해석을 감행하는 그의 거침없는 발길이 다음엔 어디로 향할지 궁금하다.1만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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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숙기자yshin@
2002-05-17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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