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필과 칠판] 교실 붕괴? 아이들이 펄펄 살아있어요

[분필과 칠판] 교실 붕괴? 아이들이 펄펄 살아있어요

이명주 기자 기자
입력 2001-11-15 00:00
수정 2001-11-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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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고등학교 졸업반 때의 담임 선생님을 만나 뵈었다.까까머리 말썽꾸러기들이 50대 중반의 의연한 사내들이되어 칠순 가까운 은사님을 모신 자리는 정말 흐뭇하고 따뜻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려주신 은사님 앞에 서니 자꾸 우리 아이들이 떠올랐다.오늘은 태운이와 희도를 많이 꾸짖었다.과제물 처리에는 무관심한 녀석들이다.전후 사정이라도 듣고 따로 개별지도를 하고 싶어도 녀석들은 줄행랑을 치기 일쑤다.3년 동안의 글쓰기 학습 결과물을 모아 ‘내 책 만들기’를 하고 그것으로 졸업 자축 기념물을 삼자는 마지막 수행 과제마저 녀석들은 그냥 뭉갤 모양이다.

그 아이들이 몹쓸 짓을 하거나 불량기가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자기 주관과 주장이 뚜렷해서 토론 시간엔 단연 두각을 나타내곤 한다.다만 워낙 구속을 싫어해서 좀 제멋대로 구는 게 흠이다.잘하든 못하든 일단 정성을 기울여 도전해 보라고 기한을 연장해 주는 것으로 오늘 얘기를 접었다.마지막까지 기다려 보자고 내심 다짐하며.

교실 붕괴나 교육 유해환경,교육정책의 난맥상 등이끊임없이 문제가 되고 있긴 하지만,무엇 하나 쉽게 풀리지 않는 게 우리의 교육풍토요 현실이다.우리는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이런 의문 앞에서 나는 우선 ‘교실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아이들의 삶과 현실로 돌아가서 문제를 보면 그 핵심이쉽게 드러나 보인다고 믿기 때문이다.무엇보다도 교실에는 가장 설득력 강한 주체인 아이들이 “펄펄” 살아있는 것이다.이보다 더 강력한 희망의 징조가 있을까? 내가 이십여년간 아이들과 고락을 함께 해온 서울 변두리의 이 작은 학교.이 곳엔 적어도 살벌한 학교 폭력이나 ‘왕따’ 따위란 없다.따뜻하고 정겨운 아이들과 천진한 개구쟁이들이 섞여 있을 뿐이다.

밖에서는 을씨년스러운 가을비가 추적거리고 있지만 교실 안에서는 마치 미명의 어둠 속을 소리없이 밟아오는 새벽빛처럼,아이들의 눈망울이 쉴새없이 초롱대고 있다.교실은아직 어른들 세상보다는 훨씬 건강하고 밝고 희망적이다.

이명주 고명중학교 교사
2001-11-1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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