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PD 배대환씨(37)는 아프리카에만 10번 넘게 다녀 온 오지전문가다.
그가 PD일을 시작한 것은 92년부터.서강대 철학과 83학번으로 이른바 ‘언론고시’에 몇차례 도전하다 실패했다.그러다 방송아카데미가 생기자 6개월 PD과정을 마친 뒤 프로덕션에 취직했다.96년 KBS ‘도전 지구탐험대’가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오지전문 독립PD로 자리잡게 됐다.
가급적 알려지지 않은 곳을 찾아다니는 오지취재는 힘든 일이 많다.1년에 6번 정도는 아프리카 등지를 방문하다 보니연중 4개월 이상은 해외에서 보낸다.
그동안 다녀온 곳만 해도 차드,부르키나파소,카메룬,콩고,모리셔스,파푸아뉴기니 등 오지라는 데는 안 거친 곳이 없다.가장 힘든 것은 늘상 텐트치고 밖에서 한뎃잠을 자는 것.
초기에 수단 취재에 나서 서울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경유할 때의 일이다.오지 음식만 먹다보면 탈이 나기 때문에 고추장,김치,숟가락 등을 철저히 챙겨 갔던 것이 사고를 냈다.
사우디의 제타공항에서 짐 검색을 받다 젓가락이 흉기로 오인받아 비행기를 못 탈 지경에 이르고만 것이다.그 곳의 한국 총영사가 나타나 겨우 사태를 수습할 수 있었다.
아프리카는 회교국가가 많다.이들의 생활풍습을 이해하지못하면 취재도 어렵다.“이슬람은 생활 자체가 종교”라고배PD는 설명한다.오지취재를 도와주는 현지 가이드들도 하루에 5번 절하는 것은 어김없이 지킨다.
“500㎞를 가야하는데 시간만 되면 손·발 닦고 자리를 깐다음에 동쪽의 메카를 향해 30분씩 절을 하는 거예요.처음에는 갈길이 바쁜데 어이가 없었지만 나중에는 이해할 수 밖에 없었어요.” 게다가 ‘바로 저기’라고 하면 12시간 이상 가야하고 ‘다 왔다’고 하면 6시간은 더 가야했다.이슬람 사회에서 종교의식은 그냥 넘기는 것이 안 통하고 자부심이 대단하다고 한다.반미의식도 적지않다.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현지인들과는 한달 정도의 취재기간안에 깊은 우정이 싹트기도 한다.96년 수단을 취재하러 갔을 때 모하메드라는 현지인 덕에 낙타 대상족을 소개받을 수있었다.그의 헌신적인 도움때문에 성공적으로 취재를 마쳤던 배PD는 너무 고마워서 진행비 가운데 300불 정도를 신문지에 싸서 감사의 뜻으로 주려고 했다.하지만 모하메드는 극구 돈을 받지 않으려했고 배PD가 강권하자 300불 가운데 반만받아갔다.3년이 지난 뒤 다시 그가 살던 집을 지나갈 기회가 있었던 배PD는 허름했던 모하메드의 흙집이 궁궐처럼 바뀐것을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99년 탤런트 방은희와 함께 수단의 카바비쉬족을 취재했을때다.방은희는 그 곳의 전통의상을 입고 현지인의 일부가 되어 함께 생활했다.일부다처제가 이뤄지고 있는 아랍 사회인지라 한 남자가 방은희에 반해 “나는 아직 아내가 3명밖에없으니 저 여자를 사고싶다”고 해서 “저 여자는 한국에서는 영화배우라 매우 비싸다”고 하며 겨우 달랜 적도 있다고 한다.특히 여성이나 아이들은 감수성이 예민해 일주일정도같이 지내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오려 할 때는 눈물을 흘리며 붙잡기 일쑤다.
오지에서 가장 큰 일은 카메라가 고장나는 것.밤11시가 되어도 모래가 섞인 열풍이 부는 사막에서는 모래 한 알이라도 들어가면 카메라가 그대로 서버린다.이렇게 카메라가 고장나면 국내에서 사람이 직접 새 카메라를 공수해 오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어 취재가 며칠 지연되게 마련이다.따라서 오지에서는 급류에 사람이 휩쓸려 떠내려 가더라도 카메라만은 목숨을 걸고 보호하게 된다고 한다.
배PD는 쳇바퀴 돌듯 일상적인 국내의 삶을 떠나 오지로 가면 거친 환경을 극복하면서 현재 살아가는 것을 반성도 하고,큰 성취감을 맛보게 된다고 설명했다.“2∼3달 국내에만 있다보면 몸이 근질거려 미칠 지경이 됩니다.늘 누구도 보지못한 미지의 땅에 가보고 싶어요.”윤창수기자 geo@.
■“특화로 승부” 영상게릴라.
방송사에 소속되지 않은,‘대평원의 하이에나’와 같은 독립PD는 ‘특화’가 중요하다.조직의 틀을 벗어나 얽매이지않고 자기만의 영역을 개발해야 한다.지상파 3사의 외주제작 프로그램 편성비율은 지난 5월 기준 KBS 28.4%, MBC 31%, SBS 39.2%정도로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다.방송은 협업시스템이긴 하지만 독립PD는 자기 색깔과 취향에 따라 프로그램을고집해서 운영할 수 있다.배대환PD는 “특정 지역을 자기만의 영역으로 삼으면 그 노하우가 엄청나게 쌓인다”고 강조했다.
카메라맨과 함께 작업하는 독립PD보다 ‘영상게릴라’라 불리는 VJ(Video Journalist)는 제도권 방송의 장벽을 훨씬 쉽게 넘을 수 있다.6㎜카메라를 직접 들고 누비는 VJ의 위력은 ‘VJ특공대’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각광받고 있다.
6㎜카메라나 독립PD들이 특히 환영받는 틈새시장 가운데 하나는 해외취재다.이들이 찍어 온 현장감 넘치는 다큐나 해외촬영화면은 IMF의 된소리를 맞은 방송사에 ‘위대한 대안’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카메듀서’는 카메라맨과 프로듀서를 합성한 용어로 PD가 직접 카메라를 들고 찍는다는 뜻에서는 VJ와 흡사하다.VJ와 달리 카메듀서는 그리 보편화 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연출과 촬영을 겸한 1인 프로듀서 시스템인 카메듀서도 활성화될전망이다.
그가 PD일을 시작한 것은 92년부터.서강대 철학과 83학번으로 이른바 ‘언론고시’에 몇차례 도전하다 실패했다.그러다 방송아카데미가 생기자 6개월 PD과정을 마친 뒤 프로덕션에 취직했다.96년 KBS ‘도전 지구탐험대’가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오지전문 독립PD로 자리잡게 됐다.
가급적 알려지지 않은 곳을 찾아다니는 오지취재는 힘든 일이 많다.1년에 6번 정도는 아프리카 등지를 방문하다 보니연중 4개월 이상은 해외에서 보낸다.
그동안 다녀온 곳만 해도 차드,부르키나파소,카메룬,콩고,모리셔스,파푸아뉴기니 등 오지라는 데는 안 거친 곳이 없다.가장 힘든 것은 늘상 텐트치고 밖에서 한뎃잠을 자는 것.
초기에 수단 취재에 나서 서울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경유할 때의 일이다.오지 음식만 먹다보면 탈이 나기 때문에 고추장,김치,숟가락 등을 철저히 챙겨 갔던 것이 사고를 냈다.
사우디의 제타공항에서 짐 검색을 받다 젓가락이 흉기로 오인받아 비행기를 못 탈 지경에 이르고만 것이다.그 곳의 한국 총영사가 나타나 겨우 사태를 수습할 수 있었다.
아프리카는 회교국가가 많다.이들의 생활풍습을 이해하지못하면 취재도 어렵다.“이슬람은 생활 자체가 종교”라고배PD는 설명한다.오지취재를 도와주는 현지 가이드들도 하루에 5번 절하는 것은 어김없이 지킨다.
“500㎞를 가야하는데 시간만 되면 손·발 닦고 자리를 깐다음에 동쪽의 메카를 향해 30분씩 절을 하는 거예요.처음에는 갈길이 바쁜데 어이가 없었지만 나중에는 이해할 수 밖에 없었어요.” 게다가 ‘바로 저기’라고 하면 12시간 이상 가야하고 ‘다 왔다’고 하면 6시간은 더 가야했다.이슬람 사회에서 종교의식은 그냥 넘기는 것이 안 통하고 자부심이 대단하다고 한다.반미의식도 적지않다.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현지인들과는 한달 정도의 취재기간안에 깊은 우정이 싹트기도 한다.96년 수단을 취재하러 갔을 때 모하메드라는 현지인 덕에 낙타 대상족을 소개받을 수있었다.그의 헌신적인 도움때문에 성공적으로 취재를 마쳤던 배PD는 너무 고마워서 진행비 가운데 300불 정도를 신문지에 싸서 감사의 뜻으로 주려고 했다.하지만 모하메드는 극구 돈을 받지 않으려했고 배PD가 강권하자 300불 가운데 반만받아갔다.3년이 지난 뒤 다시 그가 살던 집을 지나갈 기회가 있었던 배PD는 허름했던 모하메드의 흙집이 궁궐처럼 바뀐것을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99년 탤런트 방은희와 함께 수단의 카바비쉬족을 취재했을때다.방은희는 그 곳의 전통의상을 입고 현지인의 일부가 되어 함께 생활했다.일부다처제가 이뤄지고 있는 아랍 사회인지라 한 남자가 방은희에 반해 “나는 아직 아내가 3명밖에없으니 저 여자를 사고싶다”고 해서 “저 여자는 한국에서는 영화배우라 매우 비싸다”고 하며 겨우 달랜 적도 있다고 한다.특히 여성이나 아이들은 감수성이 예민해 일주일정도같이 지내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오려 할 때는 눈물을 흘리며 붙잡기 일쑤다.
오지에서 가장 큰 일은 카메라가 고장나는 것.밤11시가 되어도 모래가 섞인 열풍이 부는 사막에서는 모래 한 알이라도 들어가면 카메라가 그대로 서버린다.이렇게 카메라가 고장나면 국내에서 사람이 직접 새 카메라를 공수해 오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어 취재가 며칠 지연되게 마련이다.따라서 오지에서는 급류에 사람이 휩쓸려 떠내려 가더라도 카메라만은 목숨을 걸고 보호하게 된다고 한다.
배PD는 쳇바퀴 돌듯 일상적인 국내의 삶을 떠나 오지로 가면 거친 환경을 극복하면서 현재 살아가는 것을 반성도 하고,큰 성취감을 맛보게 된다고 설명했다.“2∼3달 국내에만 있다보면 몸이 근질거려 미칠 지경이 됩니다.늘 누구도 보지못한 미지의 땅에 가보고 싶어요.”윤창수기자 geo@.
■“특화로 승부” 영상게릴라.
방송사에 소속되지 않은,‘대평원의 하이에나’와 같은 독립PD는 ‘특화’가 중요하다.조직의 틀을 벗어나 얽매이지않고 자기만의 영역을 개발해야 한다.지상파 3사의 외주제작 프로그램 편성비율은 지난 5월 기준 KBS 28.4%, MBC 31%, SBS 39.2%정도로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다.방송은 협업시스템이긴 하지만 독립PD는 자기 색깔과 취향에 따라 프로그램을고집해서 운영할 수 있다.배대환PD는 “특정 지역을 자기만의 영역으로 삼으면 그 노하우가 엄청나게 쌓인다”고 강조했다.
카메라맨과 함께 작업하는 독립PD보다 ‘영상게릴라’라 불리는 VJ(Video Journalist)는 제도권 방송의 장벽을 훨씬 쉽게 넘을 수 있다.6㎜카메라를 직접 들고 누비는 VJ의 위력은 ‘VJ특공대’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각광받고 있다.
6㎜카메라나 독립PD들이 특히 환영받는 틈새시장 가운데 하나는 해외취재다.이들이 찍어 온 현장감 넘치는 다큐나 해외촬영화면은 IMF의 된소리를 맞은 방송사에 ‘위대한 대안’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카메듀서’는 카메라맨과 프로듀서를 합성한 용어로 PD가 직접 카메라를 들고 찍는다는 뜻에서는 VJ와 흡사하다.VJ와 달리 카메듀서는 그리 보편화 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연출과 촬영을 겸한 1인 프로듀서 시스템인 카메듀서도 활성화될전망이다.
2001-09-25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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