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선언] 늦었다고 생각될 때

[여성 선언] 늦었다고 생각될 때

조경란 기자 기자
입력 2001-03-19 00:00
수정 2001-03-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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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하다면 나는 작가는 작품으로만 독자를 만나는 것이현명하다고 생각하는 편에 속한다.그러나 이런저런 불가피한 이유들 때문에 간혹 직접 독자들을 만나게 될 때가 있다.

대개는 대학의 국문과나 문예창작과 학생들이나 문학강좌를 수강하는 수강생들이다.서울시청 문학강좌에 하루 특강을 하기 위해 늦은 저녁 시간에 그곳에 갔다.

그런 자리에 갈 때마다 내가 놀라게 되는 건 문학의 위기니 죽음이니 하는 문학을 둘러싼 별별 불길한 풍문에도 불구하고 짐작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강의를 듣고자 모여있다는 사실이다.게다가 대부분이 대학생들이거나 젊은 문학청년들 속에서 사십이나 오십쯤 돼 보이는 어른들이 늘몇 사람쯤은 반드시 있다는 것이다.가족들의 저녁 식사를마련하거나 설거지를 할 시간쯤에 말이다.어쩌다 그들의진지하고 열정적인 눈빛이라도 마주칠 때면 나는 공연히숙연해지곤 한다.

문학강좌나 인터뷰 같은 것을 할 때면 꼭 빠지지 않고 나오는 질문이 있는데 그건 내가 대학을 들어가기 전까지 대체 무얼하며 지냈느냐는 질문이다.곤혹스럽고 내키지는 않지만 나는 그 시절의 나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을 도리가없다.

나는 스물여섯 살에 대학에 입학했다.그 전에는 내가 이생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뭘까,정말 내가 간절히 하고 싶은일이 무얼까 고민하느라 청춘시절을 다 보내버리고 말았다.그리고 그것이 문학이라는 결론을 얻었을 때 나는 더이상고민하거나 망설이지 않고,시시각각으로 조여오는 불안감과 의혹을 떨쳐내고 문예창작과가 있는 대학에 가기 위해새로 입시를 준비했고 늦은 나이에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에 들어가서야 나는 내 나이가 그다지 많지 않다는 걸깨달았다. 대학을 졸업하거나 직장 생활을 하거나,아이를키워놓고 사십이 넘은 나이에도 나와 함께 신입생으로 입학한 동기들이 있었으니.

어떤 이는 환갑을 넘어서도 대학을 가고 평생 다녔던 직장을 포기하고 요리를 배우거나 자동차 정비기술을 배우기도 하고 또 일생을 꿈꾸어 왔던 에베레스트 산을 오르기도한다.일반적으로 생각하자면 무엇을 새로 시작하기에는 늦은 나이일지도 모르겠다.그러나 정말이지 나이라는 건 관념이고 굴레이고 경계일 때가 많은 법이다.

그것을 뛰어넘고 의지를 버리지 않는 사람들을 볼 때,나는진정 아름다움을 느끼곤 한다.더 중요한 건 새로운 일을시작하겠다는 의지가 아니라 그 의지를 짓누르는 실패에대한 공포와 불안감을 이기는,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의연함과 당당함이다.그건 자신에 대한 위대한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일 테니까.

배우지 못할 상황이란 없다고들 한다.거기에는 나쁜 경험도 포함된다.그 경험들을 통해서 인간은 체험하고 터득하고 사색하고 모색하게 될 테니까.

실패를 두려워하기보다는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을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최선을 다 했다면 설혹 실패했어도 다시일어설 수 있는 의지가 생기지 않을까.

사람은 두 번 산다고 했다.한 번은 자신을 위해,한 번은꿈을 위해.무엇을 시작하기에는 너무도 늦었다고 생각될때,그때가 가장 빠른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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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란 소 설 가
2001-03-19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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