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굄돌] 애들만 사냐, 어른도 살자

[굄돌] 애들만 사냐, 어른도 살자

라윤도 기자 기자
입력 2001-03-15 00:00
수정 2001-03-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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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만 사냐,어른도 살자!” 10여년전 노조의 파업이 한창일 때다.필자가 다니던 직장에서 노조 파업결의로 전체 노조원들은 아침부터 강당에 모여농성에 들어갔고,간부직원들만 사무실에 남아 일을 보고 있었다.얼마후 노조원들이 사무실에 들이닥쳐 실랑이가 벌어졌을 때 한 간부가 내뱉은 말이다.얼마전 대통령과의 대화에서,“애들 교육 때문에 이 땅에 더이상 살 수 없어 이민을 떠난다”고 말하는 한 중년 가장의 말을 들으면서 문득 이 말이 생각나는 것은 오늘날 이 땅의 ‘어른’된 이들의 현주소에 대한 회의 때문이다.

나라 ‘어른’의 대표라고도 할 수 있는 국정을 책임진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아마도 그 가장의 말을 들었을 때 누구보다 참담함을 느꼈을 것이다.강력하게 말리는 말한마디 못하고 교육예산을 얼마를 들여 개선해보겠다는 말로 대답을 얼버무리는 표정에 그 느낌이 나타나는 듯했다.

‘어른’이 ‘애들’을 위하는 것은 오늘날의 현상만은 아니다.맹자의 어머니가 아들 교육을 위해 집을 세번 옮겨다녔다는 고사가 우리에게 큰 교훈으로 전해져 오고 있듯이 예나지금이나 그것을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앞으로 20∼30년은 족히 역량을 발휘하며 사회의 중추로 살아야할 30∼40대 가장이 ‘애들’을 위한다는 이유로,이룩해온 모든 것을 중도에서 훌훌 털어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너무 큰 손실이다.게다가 이민 생활의 불확실성과 외로움,고국에의 향수 등 모든 고통을 감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내리는 그 결단에는 거룩한 희생이라는 찬사보다는 안타까움이 더 크다.

인간 수명의 증가에 따라 ‘어른’의 삶은 점점 더 길어지고 있다.‘애들’의 장래 못지않게 길어지는 ‘어른’의 삶자체도,그에 대한 준비도 중요하다.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민을 가게 되더라도,더 이상 “애들 때문에…”라는 생각도그 말 자체도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그런 표현은 애들에게도 큰 부담이 된다.애들에게 부모를 희생시킨다는 사실을 강조하게 되기 때문이다.그렇기 때문에 “우리 가족 모두를 위해서…”라고 바꾸는 것은 어떨까.‘애들’도 살고 ‘어른’도 사는 길이라는 얘기다.이민을 가고 안가고가 중요한 것이아니다.가족공동체가 다 함께 산다는 정신이 중요한 것이다.

라 윤 도 건양대 교수
2001-03-15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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