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미국의 책임 있는 富

[기고] 미국의 책임 있는 富

이효성 기자 기자
입력 2001-03-10 00:00
수정 2001-03-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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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는 한국의 상속세에 해당하는 유산세(estate tax)가있다.세율 높기로 악명이 높아서 부자들은 유산세를 피하고자,그리고 아예 유산세를 폐지하려고 갖은 노력을 해왔다.그러나 제정된 지 85년이 된 지금까지 존속하면서 미국의 소득재분배에 기여하고 있다.연방대법관을 지낸 루이스 브랜다이스는 유산세를 옹호해 “우리는 민주적인 사회를 갖든가 아니면 소수의 손에 집중된 커다란 부를 갖든가 할 수 있다.이양자를 다 가질 수는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미국은 유럽의 세습적 귀족주의를 피해온 사람들이 설립한나라다.그래서 어떤 유의 것이든 귀족주의와 세습주의에 반대하는 것이 미국의 면면한 정신이다.이런 정신은 자수성가한 부자들 자신에게도 이어진다.예컨대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거부에다가 투자가로 유명한 워린 버펫은 “유산세가없다면 사실상 부의 귀족주의를 갖게 되는데,이는 능력이 아니라 세습에 의해 국가자원을 지휘하는 자격을 전수하는 것을 뜻한다”고 지적했다.유산세 폐지를 막는 운동을 주도하는 빌 게이츠 1세(빌 게이츠의 아버지)는 비슷한 뜻을 이렇게 표현했다.“몇 명의 경주자가 이미 100야드 앞에 나가 있는 그런 경주가 아니라 모든 경주가 같은 지점에서 출발하는사회를 우리는 추구해야 한다.” 미국의 유산세는 재산가 사망으로 소유권이 바뀔 때 유산의액수에 따라 매기는 연방정부의 세금이다. 일명 사망세(death tax)라고도 부르는 이 세금은 일정한 액수 이상에 누진적으로 적용된다.현재 세금을 부과하는 하한선은 67만5,000달러인데 법에 따라 2006년에는 그 하한선을 100만달러로 인상하게 되어 있다.

유산세로 거두어들이는 액수는 연간 300억달러 정도다.미국연간 사망자의 약 2%인 4만8,000명만이 그 대상이 된다. 더욱이 이 가운데 500만달러 이상의 유산을 남기는 약 4,000명이 총액의 거의 절반에 가까운 금액을 부담한다고 한다.즉유산세 징수대상은 그 수가 아주 적을 뿐만 아니라 대상 가운데 극히 일부가 대부분의 세금을 부담하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가 유산세를 2009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지할 것을 최근 제안했다.그런데 뜻밖에도 수혜자가 될 부자들이 이에 반대하고 나섰다.부시 행정부로서는 당혹스런 일이다.그렇다면 자신에게 유리한 상속세 폐지를 반대하는 부자들,스스로 계속 세금을 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부자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인가? 그들은 바로 록펠러 일가,빌 게이츠 1세,워린 버펫,조지 소로스,폴 뉴먼 등 미국에서도 내로라하는 굵직굵직한 억만장자나 돈 많은 유명인사들이다.

이들은 ‘책임 있는 부’(Responsible Wealth)라는 단체의회원들이다.이들은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상위 5%에 속하는사람들이다.이 단체는 ①공정한 세금 ②생활급 ③기업의 사회책임 ④부의 확대를 추구한다.

부시가 대통령이 되고나서 이 단체가 벌이는 가장 주요한 활동은 유산세 폐지정책 반대운동이다.유산세가 폐지되면 빈부격차가 심해지고,약자의 복지가 더 취약해지고,부자의 사회헌금이 줄어들고,미국이 민주국가가 아니라 부자들의 귀족국가로 전락한다고 생각한다.제 이익보다는 사회·국가의 이익을 위한 부자들의 책임있는 자세라고 할 수 있다.우리 부자들도 이런 모습을 본받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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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성 성균관대 교수 현 미국 컬럼비아대 방문교수
2001-03-1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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