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굄돌] 그렇게 봄은…

[굄돌] 그렇게 봄은…

박지현 기자 기자
입력 2001-03-01 00:00
수정 2001-03-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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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우수가 지났는데도 동장군은 좀처럼 물러갈 줄 모른다.달력을 보면서 괜히 조바심치고 으스스 한기가 드는 것은요즘 날씨 탓일까.그런데 봄은 어김없이 남쪽에서 북상하고있는 모양이다.며칠 전 텔레비전 카메라가 한반도 남쪽 끝에있는 여수 오동도의 만발한 동백꽃을 잡아주었다. 비록 화면속이었지만 탐스럽기 그지 없었다. 동백꽃이 피었다가 지면뒤이어 매화·산수유도 피어날 것이다.

그러나 어디를 둘러봐도 쉽게 봄이 올 것 같지는 않다.백화점 여성의류 코너마다 때이른 봄옷들이 그 화사함을 뽐내고있지만 사람들의 표정은 시큰둥하고,신문과 텔레비전 뉴스에서는 연일 추운 소식만 보도되고 있다.구조조정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고,실업자 백만시대의 공포,인기연예인의 공연을보기 위해 며칠째 추운 바닥에서 노숙하는 청소년들,최악의대졸 취업난 등….도무지 신나고 즐거운 소식은 없는 것이다.갈팡질팡하는 교육정책도 나를 슬프게 한다.가장의 실직과예측할 수 없는 경제위기 속에서 허리띠를 더욱 졸라맬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주부들의 현주소다.봄이 저만치 왔다가도로 갈 수밖에 없을 것만 같다.아직 눈더미는 녹지 않고 아파트 후미진 곳과 골목 사이에 고집스럽게 남아 있다.

며칠 전 우연히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대다가 화단에서 어떤 물체를 보게 되었다.연두빛 어린 새싹이었다.아니 새싹이라고 하기엔 제법 모양새를 갖춘 풀이었다.너무 자주 내려이젠 지겨워진 눈 속에 깔려 있다가 며칠 녹녹해진 햇살에그 존재를 뾰족이 드러낸 것이다.반가운 마음에 앞서 갑자기마음이 신산해짐은 역시 날씨 탓만은 아니리라.

그러다가 오늘,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조카에게 가방을 하나사주려고 백화점에 데리고 갔는데,조카는 이것저것 신중하게고민하더니 제 마음에 꼭 드는 분홍빛 가방을 끌어안고 좋아어쩔 줄 몰라했다.아직 때묻지 않은 천진한 모습에서 코끝이찡해 옴을 느꼈다.순간,겹겹의 눈더미를 헤치고 쏘옥 고개내민 연초록 풀잎이 조카의 모습과 오버랩되었다.나는 어린조카를 번쩍 안아들고 가슴에 꼬옥 품어주었다. 코 안 가득시큼한 비닐가방 냄새 대신 그 조카에게선 봄 냄새가 물씬나는 것같았다.봄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박지현 시조시인.

◆알림 굄돌 필진이 3월부터 바뀝니다.앞으로 4월까지 두 달동안 집필해 주실 네 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 3∼4월 ▲박지현(46·시조시인)▲라윤도(48·건양대 교수·국제정치학)▲곽수(51·서양화가)▲이도형(36·도예평론가)
2001-03-01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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