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현대판 ‘만인소’

[씨줄날줄] 현대판 ‘만인소’

김재성 기자 기자
입력 2001-02-22 00:00
수정 2001-0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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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배 참여연대 공동대표 등 재야원로들이 개혁을 촉구하는 ‘1만인 선언’을 발표했다.국민의 정부 3년을 지켜 본재야 1만3,600명의 고언(苦言)이다.“국가개혁은 총체적 난맥상을 드러내고 있으며,낡은 정치의 악순환과 개혁리더십부재가 개혁추진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재야가보는 총론은 ‘기대 미흡’이다.이들은 특히 “부패방지법,인권위원회법,국가보안법을 비롯한 3대 입법이 정쟁속에 빈껍데기 법안으로 전락하거나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음”을 지적했다.아울러 “특별검사제가 포함된 부패방지법,수사기구와 권력기관의 인권침해에 대한 효과적 통제수단을 갖는국가인권위원회법 제정”을 촉구했다. 개혁을 열망하는 양심인사들의 현대판 만인소(萬人疏)인 셈이다.정확하게 120년전,영남 유생들의 만인소가 개화를 반대하는 소(疏)라면 현대판 만인소는 개혁을 촉구하는 소인 것이다.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도 같은 취지의 성명을 발표한 바있다.‘민주화교수 협의회’도 ‘1만인 선언’하루전인 20일,국민의 정부 3년을 평가하는 성명을 냈다.“IMF위기 극복은평가하지만 개혁은 미흡하다”는 것이다. 같은날 기독교 원로회의는 정부에 “언론세무조사 내용 공개”를 촉구하고 미국정부에 “남북의 평화통일에 협력할 것”을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발표했다.

지난 70∼80년대 민주화 운동의 본류였던 이들의 성명은 주제와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개혁을 촉구하는 점에서는 한목소리라고 할 수 있다.이는 사방의 협공에 시달리는 정부여당에 힘을 보태준다는 의미도 있지만 개혁 부진에 대한 우려와 질책의 의미도 담긴 것으로 보인다.이들은 소수 여당의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정부,여당의 개혁의지를 못 미더워 한다.개혁에 관한 한 야당에도 우군이 있고 다수국민의 지지가있는 데 이를 세력화하지 못한데 대한 질책과 자기 반성이기도 하다.그런 의미에서 묵묵히 관망하던 민주인사들의 성명은 의미심장하다.

백범(白凡)이 즐겨 쓰던 명구가 있다.[눈 길을 가는 사람은모름지기 어지럽게 걷지 마라, 오늘 나의 발자국이 다음 사람의 길이 된다(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서산(西山)대사의 오언절구인데 오늘의 상황에 딱 들어맞는 말이다.개혁은 다음 세대를 위해 틀을 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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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성 논설위원 jskim@

2001-02-22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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