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일본의 양심

[씨줄날줄] 일본의 양심

김재성 기자 기자
입력 2001-02-19 00:00
수정 2001-02-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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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히로시마(廣島)에 있는 원폭 피해 유적지를 돌아본 한국인들은 잠시 당혹감을 느낀다고 한다.동행 일본인의 비분강개에 대해 뭐라고 설명해 주기가 실로 난감하다는 것이다.

일본 극우파는 일본인들의 이 소박한 애국심을 악용한다.최근 왜곡 투성이의 중학교 역사교과서를 만든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도 그 중 하나.이들은 일본의 침략전쟁을 ‘아시아 해방전쟁’으로 주장하고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배 덕분에 저만큼 잘 살게 됐다”는 식의 황당한 주장을한다. 놀라운 것은 이렇듯 황당한 내용의 교과서가 3월 초순문부과학성의 검정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지난해 10월,‘역사교과서 검정심의회’멤버인 한 외교관 출신이 다른 위원들에게 “주변국 배려”의견을 돌렸다가 자민당우파와 우익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은 끝에 결국 심의에서 배제되는 등 전반적인 분위기가 우경화 일색이라는 것이다.

이를 걱정하는 ‘일본의 양심’들이 일어 났다.와다 하루키(和田春樹) 일본 도쿄대학 명예교수와 역사학자 아미노 요시히코(網野善彦) 등 일본 역사연구자·교육자들이다.이들 899명은 긴급 성명을 내고 “극우 역사학자들인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만든 중학교 역사 교과서가 문부과학성의 검정에 합격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밝혔다.‘사실(史實)을 왜곡하는 교과서에 역사교육을 맡겨서는 안된다’는 제목의 성명서에서 “일본정부가 이런 교과서를 채택할경우 2차대전 전의 독선적 역사교육 부활의 길을 열게 되는것이고,일본을 국제적으로 고립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리 상식으로는 너무나 당연한 이같은 주장이 그러나 일본에서는 ‘잠꼬대’로 치부되는 분위기다.일본 극우파는 양심인사들의 주장을 “미국 등 승전국이 도쿄 전범재판을 통해강요한 자학(自虐)사관”으로 몰아 붙인다.그리고 보통 사람들의 소박한 애국심은 여기에 동조하는 분위기다.이들은 일본군 위안부들의 비극적 삶을 그린 영화를 ‘매춘’,‘외설영화’로 비아냥대고 양심적 인사들에게 협박전화를 하거나찾아가 공포분위기를 조성한다.

극우파의 발호는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고립을 자초할 것이며 이는 결국 아시아의 걱정이기도 하다.다행히 신변의 위협을 무릅쓰고 바른 소리를 하는 ‘양심’이 살아있어 그나마일본에 희망을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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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성 논설위원 jskim@
2001-02-19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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