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서울학 심포지엄 “남촌이 번화했던 까닭 아세요”

2000년 서울학 심포지엄 “남촌이 번화했던 까닭 아세요”

입력 2000-11-18 00:00
수정 2000-1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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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당시 경성(현 서울)은 청계천을 기준으로 남쪽은 남촌,북쪽은 북촌으로 불렸다.북촌이 전통한옥이 즐비한 재래도시였다면 남촌은 현대식 건물과 도시계획이 정비된 신도시였다고 할 수 있다.두 지역이현대화·도시화 측면에서 이처럼 극명한 대조를 보인 것은 일제가 통치기관이 집중돼 있고,일본인 대다수가 거주한 남촌을 집중개발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17일 서울시립대 부설 서울학연구소(소장 최기수)가 주최한 ‘2000년서울학심포지엄’에서는 도시계획·건축·역사학 분야의 전문가들이근대 이후 남촌의 ‘시간·장소·사람’을 주제로 재조명하는 자리가 마련됐다.이날 학술발표회에서 서울시립대 건축도시조경학부 김기호교수는 ‘남촌-도시계획과 두시구조의 변화’라는 논문을 통해 “일제시대 가로의 신설 및 확장은 남촌에서 두드러졌다”며 “공공시설,업무·상업시설의 증가 역시 북촌에 비해 월등히 많았다”고 주장했다.이같은 ‘남촌집중현상’을 두고 김교수는 “일제가 통감부나헌병사령부,관사 등 일제 통치관련시설이 남산 아래에 집중된결과”라고 분석했다.이같은 결과로 남촌에서는 도시경관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대구대 조경학과 김한배교수는 ‘남촌 도시경관의 변천특성과관리방향’이라는 논문에서 “일제 당시 서울의 상업중심은 한국인위주의 종로와 일본인 위주의 근대상가 본정통(本町通,현 충무로)으로 이원화했다”며 “본정통을 중심으로 다방·카페·바 등 유흥공간들이 새로운 여유공간으로 등장했다”고 지적했다.특히 조선시대 실경(實景)회화에서는 북촌에서 남산을 조망하는 그림이 대부분이었으나 일제시대 이후의 사진에서는 남산에서 시가지(또는 북촌)를 조망하는 내용이 주류를 이루는 것과 관련,“이는 남산이 조망의 대상에서 주체로 바뀐 것으로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주로 거주하던 남산을공간인식의 중심으로 생각한 결과”라고 풀이했다.

일제 당시 일본인들은 남산 일대에 집중거주하였는데 1935년도의 경우 이 지역 인구의 40%를 넘었다.일본인이 이 지역에 유달리 애착을갖게 된 까닭은 1882년 임오군란 때 이곳에 처음으로 일본공사관을세운 뒤 이 지역을 ‘본거지’로 삼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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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현기자 jwh59@

2000-11-18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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