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선언] 외롭고 쓸쓸한, 죽은 문인의 사회

[여성 선언] 외롭고 쓸쓸한, 죽은 문인의 사회

노혜경 기자 기자
입력 2000-10-12 00:00
수정 2000-10-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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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문구 선생이 ‘동인문학상’ 수상을 허락했다는 소식은 나를 우울하게 한다.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와 했던 대담에서,선생은 수상을 기꺼워하는 한편 동인문학상을 둘러싸고 벌어진 안티조선 공방에 대한 간략한 견해를 피력하기도 했다.그 기사를 읽으면서 나의 우울함은 쓸쓸함으로 변해버렸다.

상을 타고 안 타고가 개인의 결정이요 영광일 뿐이라면,나의 우울함은 지극히 오지랖넓은 일이 될 것이다.그러나 실천문학사의 제1호 사원이었던 나는 결코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다.나는 이문구 선생이 의장으로 있는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전신인 자유실천문인협의회 회원들로부터 시가 ‘가진 자들의 파적거리나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변혁의 무기’라는 것을 배웠고, 그로 인해 오래 아프고 오래 힘들어 했었다.

문학을 나의 사적 경험의 형상화라고 생각했던 어린 마음이 분질러지고,문인이란 어떤 방식으로든 당대의 억압에 직면하는 존재라는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그러니 적어도 나에게 ‘이문구’라는 이름은,조태일이나 박태순이나 김남주라는 이름과 마찬가지로,절대로 양보해서는 안되는 문인의 사회적 책무가 있음을 알게 해준 이름 가운데 하나이다.

내가 특별히 조선일보라는 권력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에 서게 된 것도 그러한 배움과 절대로 무관하지 않다.거대권력의 억압이 사라진지금 언론이라는 미시권력의 횡포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나의 성정은저 80년대가 남긴 작은 열매일 뿐이다. 문인으로서 나는 조선일보가발생시키는 문제가 지극히 단순하다고 생각한다.바로 ‘말의 왜곡’이다.우리 사회의 보통사람들에게는 신문의 언어는 불편부당과 공정성이라는 규약을 지킨다는 암묵적 전제가 있다.신문이 어떤 사실을보도할 때 사용되는 언어를 두고 우리는 그것이 자의적 해석이자 왜곡일 수도 있음을 결코 의심하지 않는다.오히려 그 언어들을 최대한공정하고 사심없는 것으로,다시 말해 사실 그 자체로 받아들인다.

조선일보는 이러한 순진한 믿음을 배반하고,오히려 그 믿음을 빌미로 순수한 독자들의 판단을 지속적으로 호도하는 습관이 있다.더구나그 호도의 내용이 다른신문과는 달리 지나치게 정치적이고 기득권옹호적이라는 것도 내가 조선일보를 거절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 중의하나이다. 왜냐하면,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끄트머리에서 나는,문인이란 단순히 언어적 진실의 수호자일 뿐 아니라 진정으로 가진 것 없는자들의 뭉개진 입을 대신하는 기드온의 나팔이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나는 이문구 선생이, 동인문학상의 후보작이 되는 것까지 거절하는것은 좀 지나치더라도 수상은 거부할 줄로 대단히 ‘순진하게’ 생각했었다.자기가 사용하는 언어가 민족어이며 공동체를 위한 소통의 도구라는 인식이 없이 소설가가 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수상이결정된 후 오마이뉴스와 했던 대담에서 90년대 이후 젊은 작가들의일인칭 소설을 탓하는 이문구 선생의 말 또한 나는 그러한 맥락으로알아듣는다.그렇다면,그 민족어를 생산하는 주체인 소설가가,말을 왜곡하고 공동체의 화합을 깨뜨리는 일을 자꾸 하는 거대언론이 주는상을 아무 거리낌없이 받아들이는 모순은 어떻게 해서 옹호될 수 있을까?더구나 말로써 세상의 불의를 질타하던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적자인 이문구 선생이? 내 마음에 자잘한 빗금같은 균열이 인다.내가 세상을 바라보던 위대한 거울은 이미 깨져 버린 모양이다.내가 믿고 따라온 등불은 실은유령의 불이었던 모양이다.젊디 젊은,그리하여 세상이 우습게 보일수도 있었던 촌발날리던 한 문학소녀를 회의와 죄의식의 수렁에 빠뜨려도 좋을 만큼 문학은 찬란한 것이었다.문학이 사회변혁의 다만 한수단이 되어도 어쩔 수 없다고 이를 악물 만큼 시대의 불의를 두고볼수 없다는 결의는 막강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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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0-12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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