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청년이 뒷골목에서 두리번거리며 무엇엔가 쫓기는 듯한 표정으로빠른 걸음을 하고 있다.한 여성 역시 무슨 죄를 지은 듯이 주변의눈길을 의식하며 걸어가고 있다.이 장면은 영화나 만화에 나온 것이아니라 70년대 군사독재 시절 장발과 미니스커트의 단속을 피하려는평범한 뭇 남성과 여성의 모습이었다.
경찰은 장발을 단속한다고 머리가 조금만 길어도 청년들을 파출소로데려가서는 잡혀온 청년들의 머리를 즉석에서 가위로 잘나내곤 했다.
여대생의 미니스커트가 무릎에서 몇 센티나 올라갔는지를 재는 일도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 것도 아닌 일들이 그 당시에는 아주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군사문화에 젖어 있었던 것이다.그런데 언제부터인가우리 아이들의 머리카락이 문제가 되었다.두발을 자유화해야 한다느니,여전히 단속을 해야 한다느니 하는 논쟁이 그것이었다.학생들은두발 제한 조치를‘기본권 침해’라며 강력하게 반발해왔고,인터넷등에는 ‘우리 머리카락을 우리에게 돌려달라’는 요구가 빗발치고있다.며칠 전에는 두발 자율화를 요구하는중·고등학생들의 시위도벌어졌다고 한다.
다행히 머리카락 문제는 학생들의 자율 의사를 존중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마지못해 학생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 안타깝지만 그래도 다행이다.사실 머리카락의 문제는 학생들의 요구가 아니더라도 이미 학생들의 의사를 존중했어야 했다.때가 늦어도 한참 늦었다.몇년 전 상영되었던 영화‘여고괴담’이 왜 우리 학생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는가 생각해봐야 한다.
여고괴담의 인기는 우리 아이들이 획일적이고 군사문화적인 학교문화에 대하여 얼마나 증오하고 있는지를 잠재적으로 보여준 것이다.그당시에도 일부 교사들은 “어떻게 교사를 저렇게까지 비하할 수 있느냐” 하며 분개하기도 했다고 한다.그러나 여전히 우리의 학교는획일적이고 군대식이다.
며칠 전 버스를 타고 가면서 학생들이 하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몇몇 학생이 선생님에게 불려가서 맞았다는 이야기였다.어떤 학생은 머리를 빡빡 깎았다고 혹이 날 정도로 머리를 맞았다는 것이었다.머리를 깎아도,길러도 문제가 되는 것이다.그런데 그 학생은 맞았다는 사실을 마치 무슨 무용담이라도 되는 듯이 아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오히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필자의 얼굴이 더달아올랐다. 이제 우리의 아이들은 구타,두발 단속 등의 강요된 행동과 사고를 오히려 체념하듯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그야말로 획일화된 교사와 학교의 일방적인 지시와 명령만이 존재할 뿐 아이들의창의적인 사고와 자율적인 행동은 기대하기 어렵다.
요사이 학교 홈페이지에는 학교와 교사를 비난하는 글들이 하도 많이 올라와 아예 홈페이지를 폐쇄하는 학교까지 생겨난다고 한다.왜학교와 교사들이 이토록 학생들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는 것일까?‘여고괴담’은 정말 우리의 현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영화 속만의이야기일까?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입만 열면 떠들지만 우리의 학교는 여전히괴담만이 판을 치는 박제화된 교육만이 존재할 뿐이다.창의성,독창성과는 거리가 먼 주입식,일방적 교육이 주를 이루고 있다.
수업시간에는 암기 위주의 대학가기 위한 교육만이 존재할 뿐 창의력과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교육은 존재하고 있지 않다.특별활동이라고 해야 형식적인 활동만이 이루어질 뿐 학생들의 적성이나 특성을발굴해내는 교육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이제라도 우리의 학교는 바뀌어야 한다.아이들이 주체로 나서고 참여하는 참여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머리 모양,옷 모양,교실 모양에서부터 학생들의 참여와 창의가 발휘될 수 있어야 한다.교육의 내용과 형식도 학생들이 함께할 수있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지금 고등학교의 교육은 대학을 가기 원하는 상위 3분의 1 정도만을위한 교육이라고 한다.나머지 3분의 2 내지 반 정도는 결국 들러리인 셈이다.이제는 형식과 모양이 바뀌어야 한다.대안 학교가 왜 인기를 끌고 있는가를 생각해봐야 한다.지금이라도 학생들의 자율성과 참여가 이루어지도록 하여야 한다.머리 좀 길다고 또는 아주 짧다고 해서 무엇이 문제인가? 통제를 위한 통제는 통제를 하는 사람들에게만의미가 있을 뿐이다.두발 자유화의 문제는 또 하나의 시작일 뿐이다.
■ 임 동 욱 광주대교수·언론학
경찰은 장발을 단속한다고 머리가 조금만 길어도 청년들을 파출소로데려가서는 잡혀온 청년들의 머리를 즉석에서 가위로 잘나내곤 했다.
여대생의 미니스커트가 무릎에서 몇 센티나 올라갔는지를 재는 일도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 것도 아닌 일들이 그 당시에는 아주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군사문화에 젖어 있었던 것이다.그런데 언제부터인가우리 아이들의 머리카락이 문제가 되었다.두발을 자유화해야 한다느니,여전히 단속을 해야 한다느니 하는 논쟁이 그것이었다.학생들은두발 제한 조치를‘기본권 침해’라며 강력하게 반발해왔고,인터넷등에는 ‘우리 머리카락을 우리에게 돌려달라’는 요구가 빗발치고있다.며칠 전에는 두발 자율화를 요구하는중·고등학생들의 시위도벌어졌다고 한다.
다행히 머리카락 문제는 학생들의 자율 의사를 존중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마지못해 학생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 안타깝지만 그래도 다행이다.사실 머리카락의 문제는 학생들의 요구가 아니더라도 이미 학생들의 의사를 존중했어야 했다.때가 늦어도 한참 늦었다.몇년 전 상영되었던 영화‘여고괴담’이 왜 우리 학생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는가 생각해봐야 한다.
여고괴담의 인기는 우리 아이들이 획일적이고 군사문화적인 학교문화에 대하여 얼마나 증오하고 있는지를 잠재적으로 보여준 것이다.그당시에도 일부 교사들은 “어떻게 교사를 저렇게까지 비하할 수 있느냐” 하며 분개하기도 했다고 한다.그러나 여전히 우리의 학교는획일적이고 군대식이다.
며칠 전 버스를 타고 가면서 학생들이 하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몇몇 학생이 선생님에게 불려가서 맞았다는 이야기였다.어떤 학생은 머리를 빡빡 깎았다고 혹이 날 정도로 머리를 맞았다는 것이었다.머리를 깎아도,길러도 문제가 되는 것이다.그런데 그 학생은 맞았다는 사실을 마치 무슨 무용담이라도 되는 듯이 아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오히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필자의 얼굴이 더달아올랐다. 이제 우리의 아이들은 구타,두발 단속 등의 강요된 행동과 사고를 오히려 체념하듯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그야말로 획일화된 교사와 학교의 일방적인 지시와 명령만이 존재할 뿐 아이들의창의적인 사고와 자율적인 행동은 기대하기 어렵다.
요사이 학교 홈페이지에는 학교와 교사를 비난하는 글들이 하도 많이 올라와 아예 홈페이지를 폐쇄하는 학교까지 생겨난다고 한다.왜학교와 교사들이 이토록 학생들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는 것일까?‘여고괴담’은 정말 우리의 현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영화 속만의이야기일까?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입만 열면 떠들지만 우리의 학교는 여전히괴담만이 판을 치는 박제화된 교육만이 존재할 뿐이다.창의성,독창성과는 거리가 먼 주입식,일방적 교육이 주를 이루고 있다.
수업시간에는 암기 위주의 대학가기 위한 교육만이 존재할 뿐 창의력과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교육은 존재하고 있지 않다.특별활동이라고 해야 형식적인 활동만이 이루어질 뿐 학생들의 적성이나 특성을발굴해내는 교육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이제라도 우리의 학교는 바뀌어야 한다.아이들이 주체로 나서고 참여하는 참여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머리 모양,옷 모양,교실 모양에서부터 학생들의 참여와 창의가 발휘될 수 있어야 한다.교육의 내용과 형식도 학생들이 함께할 수있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지금 고등학교의 교육은 대학을 가기 원하는 상위 3분의 1 정도만을위한 교육이라고 한다.나머지 3분의 2 내지 반 정도는 결국 들러리인 셈이다.이제는 형식과 모양이 바뀌어야 한다.대안 학교가 왜 인기를 끌고 있는가를 생각해봐야 한다.지금이라도 학생들의 자율성과 참여가 이루어지도록 하여야 한다.머리 좀 길다고 또는 아주 짧다고 해서 무엇이 문제인가? 통제를 위한 통제는 통제를 하는 사람들에게만의미가 있을 뿐이다.두발 자유화의 문제는 또 하나의 시작일 뿐이다.
■ 임 동 욱 광주대교수·언론학
2000-10-11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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