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AP 연합] 인종 문제에 대한 설득력있는 칼럼과 인권 옹호 활동으로 존경을 받았던 흑인 언론인 칼 로완이 23일 75세를 일기로 워싱턴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50년 이상 언론인과 정부 관리 등으로활동해온 로완은 칼럼 집필 이외에 라디오와 TV 프로그램에 단골 게스트로 출연했으며 존 케네디와 린든 B 존슨 대통령 정부에 참여하기도 했다.
1925년 테네시주의 쇠락해가던 탄광촌 라벤스크로프트에서 태어난로완은 47년 오하이오주 오벌린 대학을 졸업하고 해군 최초의 흑인장교로 복무한뒤 미니애폴리스 트리뷴의 편집부원으로 언론계 생활을시작했다.
흑백 학생의 분리조치를 금지한 대법원 결정으로 인종문제가 사회적쟁점으로 부각되던 50년대에 고향인 남부로 되돌아간 로완은 인종문제를 심도있게 보도했으며,이에 감명을 받은 케네디 당시 대통령에의해 국무차관으로 발탁됐다.
이어 케네디와 존슨 행정부에서 핀란드 주재 대사와 공보처장을 지내는 등 ‘외도’했던 로완은 언론계에 복귀해 워싱턴포스트의 칼럼니스트와 킹 피처스 신디케이트를통해 전국의 각 언론매체에 게재된칼럼 집필가로 명성을 날렸다.
그는 95년 이같은 칼럼 집필의 공로를 인정받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1925년 테네시주의 쇠락해가던 탄광촌 라벤스크로프트에서 태어난로완은 47년 오하이오주 오벌린 대학을 졸업하고 해군 최초의 흑인장교로 복무한뒤 미니애폴리스 트리뷴의 편집부원으로 언론계 생활을시작했다.
흑백 학생의 분리조치를 금지한 대법원 결정으로 인종문제가 사회적쟁점으로 부각되던 50년대에 고향인 남부로 되돌아간 로완은 인종문제를 심도있게 보도했으며,이에 감명을 받은 케네디 당시 대통령에의해 국무차관으로 발탁됐다.
이어 케네디와 존슨 행정부에서 핀란드 주재 대사와 공보처장을 지내는 등 ‘외도’했던 로완은 언론계에 복귀해 워싱턴포스트의 칼럼니스트와 킹 피처스 신디케이트를통해 전국의 각 언론매체에 게재된칼럼 집필가로 명성을 날렸다.
그는 95년 이같은 칼럼 집필의 공로를 인정받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2000-09-25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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