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행씨 꿈같은 방북기 “꽃다웠던 아내모습은 어디로…”

이선행씨 꿈같은 방북기 “꽃다웠던 아내모습은 어디로…”

입력 2000-08-19 00:00
수정 2000-08-19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아내와 자식을 각각 북에 두고 온 뒤 남으로 내려와 지난 68년 재혼한 이선행(80)·이송자(81) 부부는 평양 방문에서 북에 사는 가족들을 만났다.다음은 선행씨의 방북기.

△14일 북행(北行) 하루 전.청와대 오찬을 마치고 숙소인 워커힐호텔로 들어서니 비로소 내일이면 북의 가족을 만나러 간다는 게 실감이나기 시작했다.

△15일 오전 7시.짐을 꾸려 호텔 로비로 내려오니 마음은 벌써 평양에 가 있는 것 같았다.꿈 속을 거닐듯 발걸음이 가벼웠다.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출발했다.이륙 1시간 뒤 비행기가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하는 순간 이산가족,대한적십자사 관계자,보도진 모두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버스를 타고 평양∼순안간 고속도로를 따라 평양으로 향해 오후 2시쯤 숙소인 고려호텔에 도착했다.

오후 6시쯤 드디어 꿈에 그리던 상봉의 순간이 왔다.

“아닌데….아닌 것 같은데…” 나는 너무 늙어버린 북의 아내 홍경옥(76)을 한 눈에 알아보지 못했다.26세 꽃다웠던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깊은 주름만 속절없이 패어있지 않은가.

“혼자 아이들 키우느라 고생 많았지” 하지만 최근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경옥이는 50년만에 본 남편의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 안타까웠다.어린애였던 장남 진일이(56)와 셋째 진성이(51)는 내가 죽은 줄 알고 오래 전부터 제사를 지내왔다며가족사진을 내밀었다.

아내는 내가 북의 가족들을 만나는 바로 앞에서 큰아들 박위석(61)을 만나 눈시울을 붉혔다.

△16일 오전 10시부터 객실에서 개별 상봉을 했다.북의 아내와 아들진일·진성이가 찾아왔다.

“진일아,손주들 이름이 뭐랬지” 진일이는 백지를 꺼내더니 북의 친척들과 손주들의 이름을 도표처럼그려가며 일일이 가르쳐줬다. “이게 우리집 새 족보다” 절로 함박웃음이 나왔다.

같은 시각 아내는 북의 큰아들과 만났다.처는 “위석이가 ‘외손자가 공부를 잘 해서 인민학교 단위원장(학생회장)을 하고 있다’고 자랑했다”면서 “헤어질 때 7살짜리 응석받이였던 위석이 모습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훌쩍 2시간이 지났다.점심을 먹은 뒤 오후 3시쯤 유람선을 타고 대동강 유람에 나섰다.대동문·연광정 같은 유적과이끼 낀 평양성 성벽이 그대로 남아 있는 모란봉은 보기 좋았다.

△17일 이산가족 방북단 선정 통보를 받고 북에 갈 날을 기다릴 때는그렇게 안가던 시간이 개별 상봉때는 왜 그렇게 빨리 가는지 모르겠다.

나는 북의 아내에게 “스물여섯 예쁘던 얼굴이 왜 이리 쭈글쭈글해졌어”라고 말했다.그 동안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남북 가족이 함께 하는 점심시간이 됐다.그동안 몇번 지나가면서 아내,북의 아내가 스쳐 지나갈 기회가 있었지만 선뜻 인사를 나누지 못했는데 북측 안내원이 합석을 권유,비로소 자리를 함께 할 수 있었다.

진일이는 아내에게 ‘어머니’라고 부르면서 “아버지를 돌봐 주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어서 통일이 돼서 아버지 90세 생일상은 제가차려드리겠습니다”라고 했다.

△18일 아침 일찍 숙소로 배웅을 온 북쪽 가족들을 보니 그제야 “정말 가야 하는구나” 하고 실감이 났다.모두들 부둥켜안고 울음을 터뜨렸다.겨우 버스에 올라 멀어지는 가족을 바라보면서 15일 왔던 길을 되짚어 순안공항에 도착했다.

오후 1시쯤 비행기가이륙했다.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평양의 모습을잠시 내려다보는데 불과 1시간도 안돼 김포공항에 내렸다. 이렇게 짧은 길을 그렇게 오래 걸려 돌아오다니….

특별취재단 연합
2000-08-19 4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유튜브 구독료 얼마가 적당하다고 생각하나요?
구글이 유튜브 동영상만 광고 없이 볼 수 있는 ‘프리미엄 라이트'요금제를 이르면 연내 한국에 출시한다. 기존 동영상과 뮤직을 결합한 프리미엄 상품은 1만 4900원이었지만 동영상 단독 라이트 상품은 8500원(안드로이드 기준)과 1만 900원(iOS 기준)에 출시하기로 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적절한 유튜브 구독료는 어느 정도인가요?
1. 5000원 이하
2. 5000원 - 1만원
3. 1만원 - 2만원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