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냅-2000 여름/ 록 페스티벌 열기

문화스냅-2000 여름/ 록 페스티벌 열기

홍수현 기자 기자
입력 2000-08-18 00:00
수정 2000-08-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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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창원시 종합운동장.

폭염이 퍼붓는 운동장 한복판에서 한무리의 젊은이들이 뒤엉켜 구르고 뛰고 소리지르느라 창원벌이 요란하다.간간이 소방호스로 물이 객석에 뿌려진다.온 몸이 땀에 젖어 그야말로 ‘물에 빠진 생쥐’꼴이지만 이들은 록 리듬에 맞춰 이날 밤 11시까지 10시간 가량 시간관념을 잃고 젊음을 불태우느라 여념이 없다.

포항에서 달려온 주부도 있고 대구에서 김밥을 싸들고 온 고딩(고등학생을 가리키는 은어)도 있고 서울에서 딸이 좋아하는 일본 뮤지션을 보기 위해 손잡고 내려온 40대 부인도 있었다.모두 자신이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

지난달에는 소요 록스티벌과 부산 국제록페스티벌이 열기 속에 펼쳐졌다.기대가 컸던 제1회 대한민국 록페스티벌과 2회째를 맞은 트라이포트 록페스티벌은 돌연 취소돼 우리는 정녕 미국의 우드스톡이나 일본의 후지 같은 록페스티벌을 가질 수 없는가 탄식을 하게 만들긴 했다.성급한 이들은 한국 록의 죽음을 거론하기도 한다.

그러나 ‘포에버 피스 2000’ 공연은 살인적 더위와 부족한홍보,지리적 한계 때문에 관객은 적었지만 그 열기는 한국 록의 앞날을 확신해도 좋을 만큼 뜨거웠다.

?7월 록페스티벌 지난달 광안리해수욕장에서 열린 부산 국제록페스티벌은 일본의 남성 5인조 그룹인 ‘시얌 샤이드’와 3인조 여성그룹 ‘미사일 걸 스쿠트’ 외에 5개국 19개팀과 국내 인디밴드 12개팀이 참가했다.7억원의 예산이 투입돼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부산지역 록팬들의 갈증을 해소해줬다.내년에는 국고 5억원을 지원받아 모두 17억원의 예산을 투입,국제적 음악축제로 키운다는 계획이다.

소요 록페스티벌 또한 지역주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이루어진 1회 대회를 올해도 이어갔다는 점에서 반길만 하다.특히 인디밴드나 메이저밴드 외에도 고교생이나 아마추어 밴드들의 등용문 역할을 해냄으로써 록 발전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취소된 두개의 록페스티벌 기획사도 빠른 시일안에 조그만 규모로나마 다시 개최하는 방법을 검토 중이라고 밝히고 있다.

?포에버피스 2000 이경미(17·창덕여고 1년)양.일본의 전설적인 비주얼록그룹 X-저팬의 보컬리스트였던 토시를 만날 수 있다는 일념 하나로 고속버스로 6시간 거리의 창원에 달려왔다.

팬클럽 ‘T.Z’회원 30여명을 모아 여관에서 칼잠을 지새며 이틀의공연을 빠짐없이 지켜봤다.“꿈만 같아요.어제 한끼도 못먹었습니다.

저에겐 ‘신’(神)과 같은 존재인 토시를 만날 수 있다니…”마산에서 달려운 김경욱군은 “군대가기 전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기위해” 이곳을 찾았단다.바리케이드 위에 발을 올리고 뒤로 한바퀴돌아 관중들의 머리위에 넘어지는 ‘서핑’에 열중한다.‘보디가드’ 아저씨들의 제지를 못 본체 하며.

그의 말.“정말 기분 째지게 좋은데,안전은 나도 나름대로 신경쓰며즐기고 있는데 자꾸 말리는 저 아저씨 너무 미워.한대 때려주고 싶어.”“하참,얘네들 체력도 참 대단하데이.”근처 아파트촌에서 ‘마실다니듯’ 나온 한 중년 신사는 혀를 끌끌찬다.이런 팬들이,그리고 무더위속에서도 웃통을 벗어제끼며 연주에열중하는 뮤지션들이 록의 앞날을 버팀목처럼 버텨주고 있는 것이다.

?고군분투 ‘록’앨범 이 여름 우리의 록밴드들은 댄스와 힙합그룹의 기세에 눌리고 음반시장의 축소라는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앨범을 발표하고 있다.

판매량은 잘해야 3만∼5만을 오르내리고 어떤 경우 3000장 안쪽에 그치는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열심이다.

이달 ‘귀곡(鬼哭)메탈’이란 새로운 장르를 창시한 레이니 선의 2집 ‘유감’을 시작으로,크리스천 음악에 프로그레시브록을 혼융시켰다는 평을 듣는 예레미가 오케스트라와 공동작업을 하는 등의 화려한사운드로 꾸민 3집 ’플라잉 오브 이글’을,롤러코스터가 1집을 훨씬 뛰어넘는 음악성으로 단단히 무장한 2집 ‘일상다반사’를,퍼니파우더가 풍자와 익살이 가득 담긴 가사를 경쾌한 리듬과 적절히 비벼놓은 ‘더 그레이티스트 히츠’를 내놓았다.다소 낯선 다양한 장르가선보이고 있는 것.

하지만 이들이 더 많은 대중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기회를 부여잡기란 쉽지 않은 일.방송의 외면탓.

그러나 “우리의 음악을 조금이라도 아는 이들이 있는 한” 그들은좁은 공간에서 최선을 다해 연주한다.개런티는 ‘입에 풀칠’할 정도로 매니저 등을 대동한4인조 밴드의 경우 점심값에 교통비 제하면남는 게 없지만 그래도 ‘쨍하고 해뜰날 돌아올거야’를 외치며 오늘도 무대에 오른다.

글·사진 창원 임병선기자 bsnim@.

* 록 축제가 성공하려면.

이틀걸려 22시간동안 진행된 ‘포에버 피스 2000’ 록페스티벌을 전량 녹화한 케이블채널 NTV(채널 19)의 홍수현 PD가 한국 록문화와 축제문화에 대한 글을 보내왔다.NTV는 오는 22일과 24일밤 자정,음악채널 KMTV(채널 43)는 24일 자정과 31일 밤10시 각각 2시간 분량으로편집한 실황을 녹화방영한다. [편집자 주]한국에서 록페스티벌이 성공하려면 어떤 요건이 충족되어야 하는가.

일반 사람들은 록을 단지 시끄러운 음악으로 알고있다.거친 랩과 알아들을 수 없는 가사,과격한 율동,그 모습에 열광하는 청소년들.

방송에서는 물론 레코드점에서도 록 음악은 들을 수 없고 찾을 수 없다.

적지 않은 록페스티벌들이 기획됐다가 공연 며칠 전 취소된다.좋은취지의 공연들이 관객의 외면으로 썰렁하게 끝나기 일쑤다.

한국에는 공연과 함께 놀 수 있는 부대시설이없다.공연에만 집중하는 관객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지만 아직도 록 음악이 생소한 이들을끌어들일 만한 이벤트와 부대시설이 구비됐으면 한다.

한국에서는 CD판매가 저조하다.공연장에서만 즐기고,자신이 좋아하는 그룹들의 공연만을 관람한 뒤 등을 돌리고 만다.

모두 자신이 좋아하는 곡들을 짜깁기 해서 듣고 있다.이건 소비자들의 인식이 바뀌길 기다리는 방법 외에는 대안이 없다.

한 밴드가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우리 음악이 시끄럽지만 자꾸 듣게되면 우리들의 음악도 귀에 익을 것이다.”댄스와 발라드가 우리 주변에 익숙해진 것은 방송의 힘이다.듣고 싶든 듣고 싶지 않든 그 음악들은 우리 주변에 늘상 자리잡고 있다.그렇기 때문에 듣기 좋은 음악처럼 느껴지는 것이다.방송에서만이라도균일하게 음악을 내보내야 한다.

국민적인 축제가 없어 노는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것도 한 요인이다.

브라질의 삼바,미국의 독립기념일 등등 그들 국민들이 1년내내 손꼽아 기다리는 축제가 있다.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우리 국민들이 1년에 1주일 아무 일도 않고즐길 수 있는 축제가 자리잡히면 사람들에게 록축제도 자연스럽게 스며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홍수현 NTV 프로듀서 518316429@hanmail.net
2000-08-1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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