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분단의 최대 피해자는 여성이다.같은 난리를 겪으면서도 남성보다 여성이 더욱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은 여성의 모성(母性) 때문이다.여기 그단적인 일화가 있다.
1947년 초겨울,칠흑 같은 밤,일단의 무리가 북을 탈출하려고 임진강 나루에모였다. 뱃사공이 한 아낙의 등에 있는 아이를 강에 버리자고 했다.아이가울기라도 하는 날이면 일행 모두가 죽는다는 것이었다.아이 아버지는 여럿을위해 그렇게 하자고 했다. 그러나 아이 엄마는 ‘죽으면 죽었지 못한다’며당신들(남편을 포함해)이나 가라고 했다.일행은 그들을 남겨놓고 떠나버렸다.아이 아버지도 할 수 없이 남았다.둘은 망연히 서있다가 강 상류로 올라갔다.걸어서 강을 건너기로 한 것이다.초겨울이라 물은 차가웠다.아이 엄마는아이를 연신 치켜올렸지만 물은 가슴께까지 차 올랐다.하늘의 도움인지 아이는 그 난중에도 새근 새근 잠을 자 부부는 무사히 강을 건널 수 있었다.
여럿을 위해 아이를 강에 던지자고 한 아버지의 판단은 합리적이다.그러나어머니는 아이를 안고 강물에 뛰어들망정아이를 버리지 못한다.그것은 비합리가 아니라 초월이다.그 모성의 힘이 유난히 울보였다는 아이를 초겨울 싸늘한 밤공기에도 잠들 수 있게 했다..
분단의 극한상황에서 비일비재했을 이 슬픈 이야기 속에 담긴 기적,아이도살리고 강도 무사히 건넌 모성의 힘을 민족통일의 에너지로 동원할 수 없을까.
모성의 눈으로 분단을 보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이산가족 문제를 만약 여성들이 다뤘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진전됐을 것이라는 주장은 그래서 나온다.모성은 조건부가 없다.그러므로 상호주의란 말도 없다.민족의 일원이 굶어 죽는데 더구나 성장기의 아이들이 제대로 먹지 못해 발육이 부진하다는 데 기브 앤드 테이크를 따질 수 있을까.
이번 정상회담이 과거와 다른 것은 북측이 ‘하겠다’는 의지가 확실해 보인다는 점이다.북측의 이같은 변화는 그동안 김대중(金大中) 정부가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햇볕정책을 추진한 것이 결실을 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있다.북한은 지난 몇년 동안 극심한 식량난을 겪었다.오죽하면 북한이자존심을 무릅쓰고 국제사회에 식량지원을 호소했겠는가.다행히 북한의 굶주림을 우리가 외면하지 않았다.민간단체들이 나서서 음으로 양으로 도왔다.이과정에서 북한의 생각이 달라진 것 같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역시한핏줄이구나’하는 생각을 갖게 했다는 것이다.만약 우리가 북한의 식량난을 외면했더라면? 일부 냉전론자들의 주장대로 군량미로 비축될지 모른다는둥 이유를 달아 민간단체의 구호손길을 정부가 나서서 막기라고 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김일성(金日成) 사망후 남북관계가 급랭했던 것처럼 지금쯤 남북한은 냉전에 휩싸여 있을지도 모른다.
분단은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의 패권주의 그리고 좌우파 정치세력간 권력투쟁의 산물이다.그것은 가부장적 권위주의 산물이기도 하다.이 패권주의가냉전을 부추겼다.그것은 죽임의 이데올로기였다.
정상회담을 앞두고 일부에서 여성의 주체적 참여를 모색하고 나선 데는 가부장적 패권문화의 극복은 ‘민족의 어머니’인 여성의 참여가 지름길이라는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분단이 여성에게 더 많은 고통을 안겨주었으므로 통일은 누구보다도 여성특히 어머니들의 관심사라야 한다.그런데 불행하게도 이 땅의 여성들은 통일을 정치적인 문제로 그리고 남성들의 일로만 치부해 왔다.그렇게 된 것은 역시 남성들의 냉전 이데올로기 세뇌 때문이다.이 땅의 절반인 여성들이 모성의 눈으로 통일문제를 바라볼 수 있으면 통일은 훨씬 앞당겨질 수 있으련만…. 김재성 논설위원 jskim@
1947년 초겨울,칠흑 같은 밤,일단의 무리가 북을 탈출하려고 임진강 나루에모였다. 뱃사공이 한 아낙의 등에 있는 아이를 강에 버리자고 했다.아이가울기라도 하는 날이면 일행 모두가 죽는다는 것이었다.아이 아버지는 여럿을위해 그렇게 하자고 했다. 그러나 아이 엄마는 ‘죽으면 죽었지 못한다’며당신들(남편을 포함해)이나 가라고 했다.일행은 그들을 남겨놓고 떠나버렸다.아이 아버지도 할 수 없이 남았다.둘은 망연히 서있다가 강 상류로 올라갔다.걸어서 강을 건너기로 한 것이다.초겨울이라 물은 차가웠다.아이 엄마는아이를 연신 치켜올렸지만 물은 가슴께까지 차 올랐다.하늘의 도움인지 아이는 그 난중에도 새근 새근 잠을 자 부부는 무사히 강을 건널 수 있었다.
여럿을 위해 아이를 강에 던지자고 한 아버지의 판단은 합리적이다.그러나어머니는 아이를 안고 강물에 뛰어들망정아이를 버리지 못한다.그것은 비합리가 아니라 초월이다.그 모성의 힘이 유난히 울보였다는 아이를 초겨울 싸늘한 밤공기에도 잠들 수 있게 했다..
분단의 극한상황에서 비일비재했을 이 슬픈 이야기 속에 담긴 기적,아이도살리고 강도 무사히 건넌 모성의 힘을 민족통일의 에너지로 동원할 수 없을까.
모성의 눈으로 분단을 보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이산가족 문제를 만약 여성들이 다뤘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진전됐을 것이라는 주장은 그래서 나온다.모성은 조건부가 없다.그러므로 상호주의란 말도 없다.민족의 일원이 굶어 죽는데 더구나 성장기의 아이들이 제대로 먹지 못해 발육이 부진하다는 데 기브 앤드 테이크를 따질 수 있을까.
이번 정상회담이 과거와 다른 것은 북측이 ‘하겠다’는 의지가 확실해 보인다는 점이다.북측의 이같은 변화는 그동안 김대중(金大中) 정부가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햇볕정책을 추진한 것이 결실을 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있다.북한은 지난 몇년 동안 극심한 식량난을 겪었다.오죽하면 북한이자존심을 무릅쓰고 국제사회에 식량지원을 호소했겠는가.다행히 북한의 굶주림을 우리가 외면하지 않았다.민간단체들이 나서서 음으로 양으로 도왔다.이과정에서 북한의 생각이 달라진 것 같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역시한핏줄이구나’하는 생각을 갖게 했다는 것이다.만약 우리가 북한의 식량난을 외면했더라면? 일부 냉전론자들의 주장대로 군량미로 비축될지 모른다는둥 이유를 달아 민간단체의 구호손길을 정부가 나서서 막기라고 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김일성(金日成) 사망후 남북관계가 급랭했던 것처럼 지금쯤 남북한은 냉전에 휩싸여 있을지도 모른다.
분단은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의 패권주의 그리고 좌우파 정치세력간 권력투쟁의 산물이다.그것은 가부장적 권위주의 산물이기도 하다.이 패권주의가냉전을 부추겼다.그것은 죽임의 이데올로기였다.
정상회담을 앞두고 일부에서 여성의 주체적 참여를 모색하고 나선 데는 가부장적 패권문화의 극복은 ‘민족의 어머니’인 여성의 참여가 지름길이라는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분단이 여성에게 더 많은 고통을 안겨주었으므로 통일은 누구보다도 여성특히 어머니들의 관심사라야 한다.그런데 불행하게도 이 땅의 여성들은 통일을 정치적인 문제로 그리고 남성들의 일로만 치부해 왔다.그렇게 된 것은 역시 남성들의 냉전 이데올로기 세뇌 때문이다.이 땅의 절반인 여성들이 모성의 눈으로 통일문제를 바라볼 수 있으면 통일은 훨씬 앞당겨질 수 있으련만…. 김재성 논설위원 jskim@
2000-05-24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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